', { cookie_domain: 'auto', cookie_flags: 'max-age=0;domain=.tistory.com', cookie_expires: 7 * 24 * 60 * 60 // 7 days, in seconds }); 티라노의 보물 :: '재미있는 영화세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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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허리우드 걸작영화, 클라크 게이블, 그레이스 켈리의 모감보

 

 

 

오늘은 고전 허리우드영화 중에서 뛰어난 명작 하나를 소개해볼까 한다. 1950~60년대에 뛰어난 미모와 연기력으로 인기가 높았던 두명의 허리웃 미녀여배우들이 있었다

미국 허리웃 최고미인 여배우로 알려진 그레이스 켈리와 최고의 글래머여배우 에바 가드너는 당대에 인기와 연기력에 있어서 투톱체제를 구축했던 인기 여배우들이었는데 이 두 라이벌 여배우들이 영화 모감보에서 함께 만나 치열한 연기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에바 가드너

 

50년대 허리우드의 미의 지존이자 자존심이었던 그레이스 켈리와 육감적인 매력을 갖춘 섹시한 여배우 에바 가드너가 한 남자(클라크 케이블)을 사이에 두고 사랑의 줄다리기를 펼치는 로망과 모험이 넘치는 영화가 바로 모감보.

 

그레이스 켈리는 미국 허리우드영화계에 진출한지 몇 년도 되지않아 그 완벽한 미모를 앞세워서 주연배우로 발탁되어 하이눈모감보에 전격 주연급으로 캐스팅되었을 정도로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는 당대 최고의 수준이었으며 50년대 최고미녀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녔을 정도이다.

 

그레이스 켈리

 

에바 가드너는 육감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매력으로 많은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관능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글래머여배우였는데 서로 정반대의 이미지를 지닌 두 톱스타가 한 영화에서 만나 서로의 미모와 연기력을 한껏 뽐내면서 인상적인 연기경쟁을 펼쳐, 영화의 재미와 품질을 한층 더 높여놓았던 영화가 모감보이다.

 

영화 모감보에서 그레이스 켈리와 에바 가드너 등 두미녀들의 애정을 한몸에 받으며 유유자적하는 바람둥이 스타일의 클라크 게이블은 허리웃의 가장 멋진 사나이답게 두 미녀사이를 오가면서 자신의 열정과 박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클라크 게이블, 에바 가드너, 그레이스 켈리 등 당대 최고의 톱스타들이 총출동된 것만으로도 화제를 뿌리고도 남았던 영화 모감보는 내용과 연기력에서도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인데, 특히 그레이스 켈리와 에바 가드너의 명연기를 볼 수 있는 정말 몇 안되는 뛰어난 걸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모감보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프리카의 드넓은 평원과 그위에 펼쳐지는 야생의 코끼리떼들, 그리고 험악한 악어떼들, 코뿔소, 하마, 고릴라 등 재미있고 신기한 동물들을 신나게 볼 수 있는 영화로 남녀간의 로망과 아프리카 모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건질 수 있는 매우 희귀하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사자도 한 마리 나와 볼거리가 정말 풍족하다.

 

위험한 야생의 맹수들과 토인들의 위협을 배경으로 해서 두 남녀의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내용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금단의 사랑이라는 것을 상징하기라도 할 만큼, 떠돌이 헌터(클라크 게이블)과 정숙한 유부녀(그레이스 켈리)의 뜨거운 사랑은 위태위태하면서도 나름대로 값진 의미를 시사해주고 있는 듯하다.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지루한 일상생활에서의 일탈과 미지의 세계에서의 모험을 영화 모감보는 대리만족시켜 주기에 충분한 영화라고 하겠다.

 

아프리카에서 동물매매사업을 하고있는 전문사냥꾼 헌터 마스웰(클라크 게이블)과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성격의 야성녀 하니 베어(에바 가드너), 고지식하고 정숙하기로 소문난 학자부인 린다(그레이스 켈리), 세사람이 아프리카 드넓은 평원에서 만나 마음속에 억제되어 왔던 욕망의 불꽃을 활짝 피우며 뜨거운 사랑의 삼각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정숙한 학자부인으로 나왔던 그레이스 켈리의 연기는 정말 극찬을 받을 정도로 대단했으며 가장 인상적인 명품연기라고 할 만하다.

학자인 남편의 동물조사를 수행하기 위해 왔던 아프리카 야생탐구 현장에서 평소 정숙하고 완고했던 부인 그레이스 켈리가 바람둥이스타일인 멋진 클라크 게이블을 보고 가슴속에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과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모습은 한편 위태로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휴머니즘을 진하게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에바 가드너

 

 

허리우드의 대표적인 미남배우 클라크 게이블의 완숙한 내면의 연기가 또한 큰 빛을 발하고 있으며, 등장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당대 최고 미녀여배우 그레이스 켈리, 수많은 남자들의 로망으로 물오를 데로 올라버린 에바 가드너의 도발적인 연기 등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요소들을 고루 갖춘 영화 모감보는 가장 뛰어난 고전 허리우드영화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완벽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짜임새있고 완성도 높은 영화가 50년대(53)에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데, 컴퓨터CG로 장난 쳐서 만들어진 현대의 수많은 영화들보다도 배우들의 품격면에서나 질높은 연기력, 그리고 자연그대로의 아프리카의 멋진 배경등에서도 휠씬 품질 높은 영화 모감보를 보았다는 자체가 감개무량할 정도다.

 

 

50년대 최고 걸작영화 중 하나로 정평이 난 영화 모감보를 혼자만 알고있기가 너무 아까와서 9분짜리와 7분짜리 숏동영상 2개를 만들어서 올렸는데, 그레이스 켈리와 에바 가드너가 멋진 매력을 발산하면서 사랑경쟁을 벌이는 명장면을 한번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레이스 켈리, 에바 가드너 주연의 모감보영화 동영상

 

1부

 

 

 

2부

 

 

  

 

 

클라크 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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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홍콩무술영화, 왕우의 외팔이드래곤감상하기

 

 

 

70년대 홍콩(중국)에서 무술영화의 캐릭터를 개척했던 인물이 바로 외팔이검객영화의 주인공 왕우라고 한다.

무술영화나 무협영화는 홍콩에서 처음 개척되었던 영화장르이다. 1840년대 영국과 청나라의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승리의 전리품으로 홍콩과 싱가폴을 할양받고 홍콩을 식민지배하기 시작한다.

 

 

19세기 아시아전체국가들이 전근대적인 봉건주의체제하에서 산업화와 문명화가 되쳐져있을 무렵 영국의 지배를 받게된 홍콩은 영국의 선진자본, 선진기술이 도입되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사실 일본보다도 더 먼저 아시아에서 근대화를 이루었던 나라가 바로 홍콩이다.

 

영국의 선진기술의 도입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루었던 홍콩은 영국의 발전된 뮤지컬과 영화산업을 발빠르게 도입하고 그것을 홍콩 즉, 중국콘테츠와 결합시켜서 새롭게 탄생시킨 문화가 바로 무협영화 장르이며 1950년대 중후반부터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사가 홍콩(중국)무협영화들을 대거 제작하고 고전무협영화의 흥행과 붐을 이끌면서 홍콩영화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쇼브라더스사는 영국의 많은 기사영화들에서 힌트를 얻었으며 그러한 서양의 정의로운 기사도콘텐츠를 중국 고유의 의리와 충절을 지킨 영웅담과 접목시켜서 중국 특유의 무협영화들을 제작함으로서 쇼브라더스에서 만든 수많은 무협무술영화들로 1960년대와 70년대의 아시아시장을 완전 장악할 수 있었다.

 

 

홍콩이 60~70년대 무협영화들로 아시아 영화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홍콩의 선진화된 영화기술과 뛰어난 영화콘테츠가 있었기 때문이며 특히 쇼브라더스 같은 최대자본의 영화사들이 그들의 거대한 자본과 우수한 배우들을 육성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60~70년대에 쇼브라더스사에 의해서 홍콩(중국)무협영화들은 봇물처럼 계속해서 제작되어 상영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쇼브라더스사가 만든 무협영화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커다란 붐을 형성하였으며 한국관객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칼을 휘두르는 쇼브라더스사의 무협영화들에 엄청난 환호와 감동을 느끼며 홍콩(중국)무협영화에 완전 매료되었던 시기가 바로 60~70년대라고 한다.

 

외팔이검객’ ‘철수무정’ ‘아랑곡의 혈투’ ‘옥중도’ ‘12인의 여걸등 그당시 우리나라와 아시아에게 대히트했던 이영화들이 모두 쇼브라더스에서 만들었던 영화들이며 이영화들은 지금까지도 불후의 명작들로 평가되는 위대한 영화들이다

그 외에 무협영화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공전의 대히트를 하면서 리칭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스잔나또한 바로 쇼브라더스사에 만들었으며 역시 불후의 명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중반사이에 홍콩(중국)영화들이 한국 등 아시아영화시장을 주도해나갔던 시기에 왕우와 리칭 같은 위대한 홍콩스타들이 스타덤에 오르고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게됨은 너누나도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왕우나 리칭은 그당시 아시아에서 히트했던 영화들의 주인공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이들 홍콩스타들의 인기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게 된다.

 

영화 스잔나출연으로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주인공 리칭은 72년도에 우리나라에 스카웃되어서 신상옥감독의 신필름에서 리칭의 여선생등 영화 세편을 찍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으며, 왕우는 외팔이검객영화의 폭팔적인 인기와 흥행성공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선호하는 무협스타로 각광받게 된다.

 

2013년도경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왕우가 우리나라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것도 따지고보면 60~70년대에 외팔이검객’ ‘외팔이드래곤같은 불후의 명작은 남겼기 때문으로 60~70년대의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꿈과 낭만을 심어주었던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66년도에 외팔이검객이 만들어졌고 71년도에 외팔이드래곤이 만들어져 상영되었는데, 그로부터 무려 40년 이상이 지난 2013년에 우리나라 국제영화제에서 왕우에게 공로상을 준 것은 매우 이례적이면서 뜻깊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왕우와 외팔이영화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잊지못하는 수많은 중년팬들의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겠는가?

 

아뭏튼 왕우는 60~70년대의 홍콩(중국)무협무술영화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왕우는 쇼브러더스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에 외팔이검객’ 1편과 2편을 찍고 난 후 

70년도에 자신이 감독과 주연, 시나리오를 겸해서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 용호투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홍콩(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권법무술영화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외팔이검객에서 현란한 칼솜씨로 관객들을 감동시켰던 왕우가 이제는 칼을 버리고 맨손으로 적을 공격하고 쓰러뜨리는 권법무술영화를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그후 왕우는 흑백도’ ‘외팔이드래곤같은 명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냄으로써 맨손으로 싸우는 권법무술영화의 흥행과 붐을 새롭게 조성해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권법무술영화의 효시는 바로 왕우의 용호투라고 할 수 있으며 그후 71년도에 만들어진 외팔이드래곤은 왕우가 권법무술영화를 더욱 세련된 기법으로 발전시켰던 영화로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명작품이다.

 

왕우에 의해서 처음으로 탄생된 권격무술영화들, 용호투, 흑백도, 외팔이드래곤 등 세작품은 왕우의 대표작으로 모두 왕우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했으며 직접 주연으로 출연하는 등 13역으로 완성시켰던 영화들로써 70년대 초반 한국의 젊은세대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환희를 안겨주었던 추억의 무술영화로 길이 남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왕우가 2013년도에 우리나라의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왕우의 영화세계를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이제 왕우의 영화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직접 눈으로 감상하는 일만이 남은 것같다. 필자가 운영하는 다른 블로그 로망스에도 올린 적이 있는 왕우 영화 외팔이드래곤을 다시 한번 감상하면서, 그 시절의 추억속으로 다시한번 돌아가보자!

 

왕우의 외팔이드래곤영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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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마담의 원조 양자경, 남친 장 토드와 결혼약속, 발차기 영상

 

 

 

홍콩(중국배우) 양자경은 1985년 홍콩영화 예스마담(황가사저)’에 최초로 주인공으로 출연했으니, 양자경이야말로 예스마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양자경이 최초로 영화 예스마담에 출연해서 한국과 아시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되었는데, 80년대 중후반은 영화 예스마담의 붐이 크게 일어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양자경은 영화 예스마담에서 여성스러운 부드러움과 강인한 여전사로서의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고 특히 남성관객들은 처음으로 보는 여성파이터의 화려한 액션연기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며 넋을 잃고 완전 빠져들어가 버렸다.

 

양자경은 80년대 중반 예스마담영화를 통해서 최초의 미인 여전사라는 명예로운 닉네임을 얻으면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된다.

그후 양자경은 예스마담2(황가전사)’ 영화에 출연해서 더욱 세련되고 화려한 액션연기를 펼쳐보여줌으로써 한국과 아시아에서 양자경 신드롬’ ‘예스마담 신드롬을 양산하면서 8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스타로 급부상하게 된다.

 

 

양자경의 무술동작은 매우 절도가 있으면서도 우아하기까지 하다. 마치 한 마리의 학이 군무를 추는 것처럼 화려하면서도 절도있고 절제된 기품이 느껴지기까지하다

양자경이 남자들도 하기힘든 무술액션 동작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것은 그녀가 원래 무용과 발레를 오랜시절 동안 전공했기 때문이며 

어린 시절부터 무용을 몸으로 익혀온 양자경은 매우 유연한 몸동작과 뛰어난 운동신경이 기본이 되어 영화 예스마담에서의 화려하고 절도있는 무술액션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예스마담을 통해서 아름다운 동양적 미모를 간직한 양자경이 절도있고 화려한 무술액션을 펼쳐보임으로써 아시아의 수많은 남성관객들에게 열띤 환호와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양자경은 나중에 허리우드에 진출하여 찍은 영화 와호장룡에서도 신기에 가까운 검술액션을 선보여서 크게 각광을 받기도 했다.

 

 

양자경은 명실공히 홍콩무술액션영화에서 최초의 여성파이터로 등장했던 배우이며 양자경이 개척한 여성파이터의 영화가 아시아에서 엄청난 흥행몰이와 붐을 일으키게 되자, 80년대 중후반에는 제2의 양자경과 제2의 예스마담 시리즈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양자경이 흥행에 성공시킨 예스마담영화로 재미를 톡톡히 본 덕보영화사는 양자경이 결혼을 하고 은퇴하자, 양자경의 뒤를 이을 제2의 양자경, 2의 여성파이터들을 발굴했는데 미모와 액션연기를 모두 갖춘 양리칭이 발탁되어 양자경이 일으킨 예스마담영화 시리즈의 흥행을 계속 이어나가게 하였다.

 

 

양자경이 인기의 절정기인 87년도에 갑자기 은퇴했는데 그것은 D&B(덕보영화사)의 사장 반적생과 결혼 때문이다.

 

양자경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발탁하고 영화 예스마담을 제작했던 D&B(덕보)영화사의 사장 반적생과 눈이 맞아 전격 결혼했으며 결혼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87년도에 은퇴하였지만

남편 반적생이 운영하는 D&B(덕보)영화사가 90년대 들어 연이어 흥행에 실패하면서 결국 해산하자 양자경과 남편 반적생의 애정전선에 금이 가게 되었고 두사람은 92년도에 서로의 장래를 위해서 합의이혼하였고 양자경은 다시 홀로서기를 하기위해 영화계로 돌아온다.

 

 

영화계에 다시 복귀한 양자경은 성룡의 폴리스스토리 3와 동방삼협과 태극권등 액션영화에 출연하면서 재기에 성공했으며 예스마담당시의 높은 인기를 다시 되찾는데 성공한다. 그후 허리우드까지 진출해서 와호장룡’ ‘007 네버다이시리즈의 본드걸로 나오는 등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간다.

 

양자경이 동양여배우로서 영화 ‘007’에 출연하여 본드걸이 되었다는 것은 그녀의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우수한 연기력이 이미 허리우드에서도 검증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경은 허리우드 영화 와호장룡’ ‘007 네버다이’ ‘미이라3’에도 출연하면서 동양여배우로서 최초로 허리우드에 진출해 성공한 여배우로 유명하다.

 

 

양자경은 원래 말레이시아 태생으며 화교집안이라고 하며 그녀가 83년도에 말레이시아 미인대회에 출전해 미스 말레이시아로 뽑힌 미녀출신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양자경의 미모는 오래전에 공증받은 셈이다.

 

양자경은 이혼후 오랫동안 홀로 지내다가 2013년 페라리자동차회사 CEO출신인 장 토드와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는데 양자경과 장 토드는 무려 8년간 열애를 해왔다고 한다. 양자경은 장 토드에게 엄청나게 비싼 다이아몬드반지를 프로포즈의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양자경은 결혼을 발표한 후 2년 동안 결혼식을 치르지않아 혹시 두사람이 결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심을 키워왔는데, 결혼 발표후 양자경은 작년에 부친상을 당했고 또한 영화 출연으로 무척 바쁜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결혼이 미뤄진 것뿐이란다.

양자경과 남자친구 장 토드는 금년말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하며 두사람의 애정전선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양자경과 남자친구 장 토드 사진

 

양자경의 남자친구 장 토드는 현재 국제자동차연맹 회장으로 역임하고 있으며 프랑스인이다. 양자경이 62년생이니까 현재 나이가 54세인데도 젊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며, 영화출연을 계속하면서 장수하는 여배우로서의 면모를 톡톡히 과시하고 있다.

 

예스마담의 여전사인 양리칭과 양자경은 둘다 미모가 뛰어나다는 점이 공통점인데 양리칭이 여성스러우면서도 샤프한 성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면 양자경은 부드럽고 온화한 매력, 그리고 후덕한 매력을 지녔다고 느껴진다.

 

예스마담에서 보여주는 절묘한 발차기 액션은 양리칭보다 양자경이 한 수 위라고 보여지며 어렸을 적부터 무용으로 다져진 양자경은 중국무술영화에서 발차기액션을 가장 잘하는 여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자경이 출연한 예스마담 시리즈는 총 4편이며 예스마담1-황가사저’ ‘예스마담2-황가전사’ ‘예스마담-중화전사’ ‘예스마담-통천대도로 모두 85년부터 양자경이 은퇴한 87년까지 찍었던 영화로서 아시아에서 흥행에 성공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았으며 당시 한국에서 양자경은 가장 인기가 높았던 아이돌스타였다.

 

예스마담1’에서 양자경과 콤비를 이루면서 환상적인 무술액션을 보여주었던 신시아 로스록(라부락)도 참 인기가 높았던 여배우이며 태권도 발차기의 달인어었다.

신시아 로스록(라부락)은 미국의 태권도사범으로 영화 예스마담무술액션을 화려하게 장식해주면서 영화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럼 85년도에 상영되었던 양자경의 예스마담1를 감상해보자!

 

 

양자경의 예스마담1(황가사저) 동영상 (후반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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