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ookie_domain: 'auto', cookie_flags: 'max-age=0;domain=.tistory.com', cookie_expires: 7 * 24 * 60 * 60 // 7 days, in seconds }); 티라노의 보물 :: 왕우의 외팔이드래곤 동영상, 홍콩(중국)무협무술영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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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홍콩무술영화, 왕우의 외팔이드래곤감상하기

 

 

 

70년대 홍콩(중국)에서 무술영화의 캐릭터를 개척했던 인물이 바로 외팔이검객영화의 주인공 왕우라고 한다.

무술영화나 무협영화는 홍콩에서 처음 개척되었던 영화장르이다. 1840년대 영국과 청나라의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승리의 전리품으로 홍콩과 싱가폴을 할양받고 홍콩을 식민지배하기 시작한다.

 

 

19세기 아시아전체국가들이 전근대적인 봉건주의체제하에서 산업화와 문명화가 되쳐져있을 무렵 영국의 지배를 받게된 홍콩은 영국의 선진자본, 선진기술이 도입되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사실 일본보다도 더 먼저 아시아에서 근대화를 이루었던 나라가 바로 홍콩이다.

 

영국의 선진기술의 도입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루었던 홍콩은 영국의 발전된 뮤지컬과 영화산업을 발빠르게 도입하고 그것을 홍콩 즉, 중국콘테츠와 결합시켜서 새롭게 탄생시킨 문화가 바로 무협영화 장르이며 1950년대 중후반부터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사가 홍콩(중국)무협영화들을 대거 제작하고 고전무협영화의 흥행과 붐을 이끌면서 홍콩영화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쇼브라더스사는 영국의 많은 기사영화들에서 힌트를 얻었으며 그러한 서양의 정의로운 기사도콘텐츠를 중국 고유의 의리와 충절을 지킨 영웅담과 접목시켜서 중국 특유의 무협영화들을 제작함으로서 쇼브라더스에서 만든 수많은 무협무술영화들로 1960년대와 70년대의 아시아시장을 완전 장악할 수 있었다.

 

 

홍콩이 60~70년대 무협영화들로 아시아 영화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홍콩의 선진화된 영화기술과 뛰어난 영화콘테츠가 있었기 때문이며 특히 쇼브라더스 같은 최대자본의 영화사들이 그들의 거대한 자본과 우수한 배우들을 육성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60~70년대에 쇼브라더스사에 의해서 홍콩(중국)무협영화들은 봇물처럼 계속해서 제작되어 상영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쇼브라더스사가 만든 무협영화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커다란 붐을 형성하였으며 한국관객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칼을 휘두르는 쇼브라더스사의 무협영화들에 엄청난 환호와 감동을 느끼며 홍콩(중국)무협영화에 완전 매료되었던 시기가 바로 60~70년대라고 한다.

 

외팔이검객’ ‘철수무정’ ‘아랑곡의 혈투’ ‘옥중도’ ‘12인의 여걸등 그당시 우리나라와 아시아에게 대히트했던 이영화들이 모두 쇼브라더스에서 만들었던 영화들이며 이영화들은 지금까지도 불후의 명작들로 평가되는 위대한 영화들이다

그 외에 무협영화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공전의 대히트를 하면서 리칭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스잔나또한 바로 쇼브라더스사에 만들었으며 역시 불후의 명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중반사이에 홍콩(중국)영화들이 한국 등 아시아영화시장을 주도해나갔던 시기에 왕우와 리칭 같은 위대한 홍콩스타들이 스타덤에 오르고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게됨은 너누나도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왕우나 리칭은 그당시 아시아에서 히트했던 영화들의 주인공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이들 홍콩스타들의 인기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게 된다.

 

영화 스잔나출연으로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주인공 리칭은 72년도에 우리나라에 스카웃되어서 신상옥감독의 신필름에서 리칭의 여선생등 영화 세편을 찍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으며, 왕우는 외팔이검객영화의 폭팔적인 인기와 흥행성공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선호하는 무협스타로 각광받게 된다.

 

2013년도경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왕우가 우리나라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것도 따지고보면 60~70년대에 외팔이검객’ ‘외팔이드래곤같은 불후의 명작은 남겼기 때문으로 60~70년대의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꿈과 낭만을 심어주었던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66년도에 외팔이검객이 만들어졌고 71년도에 외팔이드래곤이 만들어져 상영되었는데, 그로부터 무려 40년 이상이 지난 2013년에 우리나라 국제영화제에서 왕우에게 공로상을 준 것은 매우 이례적이면서 뜻깊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왕우와 외팔이영화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잊지못하는 수많은 중년팬들의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겠는가?

 

아뭏튼 왕우는 60~70년대의 홍콩(중국)무협무술영화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왕우는 쇼브러더스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에 외팔이검객’ 1편과 2편을 찍고 난 후 

70년도에 자신이 감독과 주연, 시나리오를 겸해서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 용호투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홍콩(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권법무술영화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외팔이검객에서 현란한 칼솜씨로 관객들을 감동시켰던 왕우가 이제는 칼을 버리고 맨손으로 적을 공격하고 쓰러뜨리는 권법무술영화를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그후 왕우는 흑백도’ ‘외팔이드래곤같은 명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냄으로써 맨손으로 싸우는 권법무술영화의 흥행과 붐을 새롭게 조성해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권법무술영화의 효시는 바로 왕우의 용호투라고 할 수 있으며 그후 71년도에 만들어진 외팔이드래곤은 왕우가 권법무술영화를 더욱 세련된 기법으로 발전시켰던 영화로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명작품이다.

 

왕우에 의해서 처음으로 탄생된 권격무술영화들, 용호투, 흑백도, 외팔이드래곤 등 세작품은 왕우의 대표작으로 모두 왕우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했으며 직접 주연으로 출연하는 등 13역으로 완성시켰던 영화들로써 70년대 초반 한국의 젊은세대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환희를 안겨주었던 추억의 무술영화로 길이 남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왕우가 2013년도에 우리나라의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왕우의 영화세계를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이제 왕우의 영화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직접 눈으로 감상하는 일만이 남은 것같다. 필자가 운영하는 다른 블로그 로망스에도 올린 적이 있는 왕우 영화 외팔이드래곤을 다시 한번 감상하면서, 그 시절의 추억속으로 다시한번 돌아가보자!

 

왕우의 외팔이드래곤영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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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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