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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칭, 로례 주연의 고전무협영화 철수무정의 줄거리와 동영상, 60년대 홍콩무협영화 걸작품

 

쇼브러더스사 제작, 장철감독 작품. 1969년작

주연 - 리칭, 나열

 

우리나라에서 70년대는 홍콩무협영화나 무술권법영화가 최고로 인기있는 장르였다.

 

홍콩의 유명한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사와 골든하베스트사에서 제작한 무협영화들이 수없이 많이 들어왔고, 최고의 히트를 치던 시기였다.

 

70년대에는 홍콩의 최대 자본의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사에서 제작된 검객무협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상영되었는데, 특히 로례(나열), 왕우, 리칭 등이 주연을 맡은 무협검객 영화들이 70년대 전반에 대단히 큰 인기가 끌었으며, 흥행을 주도해나갔다.

 

 

70년대 초반 홍콩 쇼브러더스의 대표적인 무협스타 로례(나열)와 홍콩의 대표적인 미녀스타 리칭이 열연한 영화 철수무정이 크게 히트하였는데, 철수무정은 당시 홍콩무협영화의 정수를 보여준 대단한 걸작품이다.

 

70년대 당시 로례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나열이 포도대장으로 분해 도적무리를 일망타진하는 냉정한 협객으로 출연해서 독특한 카리스마와 화려하고 멋진 검술액션을 선보여준 철수무정은 당시 아시아의 최고 인기배우이자 홍콩의 대표적 미인으로 인기가 높았던 리칭이 함께 출연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영화이다.

 

 

 

아마도 많은 무협팬들은 철수무정60~70년대 가장 뛰어난 걸작품으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홍콩의 쇼브라더스사에서 중견배우로 활동하던 나열은 철수무정의 흥행 성공으로 인해 스타덤에 올랐고, 영화 스잔나의 히트로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던 리칭은 철수무정의 흥행성공으로, 아시아의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 철수무정 줄거리 -

 

배우들의 연기력과 작품의 구성, 그리고 화려한 검술액션과 긴박감, 작품의 내용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영화 철수무정60~70년대 홍콩 고전무협영화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특히 철수무정의 마지막 25분은 로례(나열)와 리칭의 상봉하는 장면과 최후의 결투신으로 관객들의 감동을 자아내게 만든 명장면이다.

 

 

포도대장 로례(나열)가 부상을 당해 찾아간 집은 도적두목 마위갑의 집으로, 그집에서 예상치않게 도적두목의 딸 계고(리칭)를 만나게 된다.

계고(리칭)의 도움을 받아 부상에서 회복된 로례(나열)는 시각장애자인 리칭의 청순하고 착한 마음씨에 감동받아 그녀에게 연정을 품게 되는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녀는 바로 자신이 쫒던 도적패의 두목 마위갑의 딸이며, 두 사람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과연 어떻게 결말을 맻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관전포인트다.

 

원수의 딸을 연모하게 된 포도대장 철무정(로례)과 도적두목의 딸 계고(리칭)의 마지막 장면은 두사람의 순수한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지만, 포도대장 철무정과 계고(리칭)의 아버지인 마위갑은 마지막으로 숙명적인 대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

 

 

 

 

수년동안 온갖 도적질과 살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도적두목 마위갑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를 죽여야만 하는 포도대장 철무정의 마지막 한판결투가 손을 땀을 쥐게 만드는 멋진 영화이다.

 

쇼브라더스사에서 만든 3대 검객무협 걸작품들이 있는데, 바로 외팔이 검객과 아랑곡의 혈투, 철수무정이다.

 

이 세편의 무협영화들은 모두 쇼브러더스사에서 만든 작품들로서, 70년대 내용이나 구성면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당대의 걸작품이며, 그 영화의 중심에는 로례와 리칭이 있다.

 

 

리칭 로례(나열) '철수무정' 후반부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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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홍콩(중국)무협영화, 하리리의 봉비비여검객시리즈

 

 

 

홍콩(중국)무협영화 봉비비(鳳飛飛)’는 하리리와 남석훈이 주연을 맡아 멋진 검술액션을 펼치는 고전무협영화이다.

 

 

홍콩(중국)무협영화 봉비비71년도에 홍콩의 최대자본의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사가 야심차게 만든 음모와 배신, 그리고 의리를 주모티브로 하는 전형적인 홍콩무협영화로서 71년도에 우리나라에 상영되어 젊은층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추억의 무협영화라고 보면 된다.

 

영화제목이 봉비비인데 이것은 중국의 유명한 전설적인 여자검객의 이름으로 성씨가 이고 이름은비비라고 보면 된다.

중국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과거의 여자검객 봉비비를 소재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로 봉비비의 여주인공을 맡은 하리리는 미모와 연기력을 골고루 갖춘 이당시 최고의 글래머스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않을 것이다.

 

 

 

홍콩(중국)에서 검술무협영화의 붐이 한창 유행하면서 대중들로부터 각광을 받던 시기가 60~70년대인데 이시기에 홍콩의 쇼브라더스사는 1년에 40편이 넘는 무협영화들을 제작해서 절찬리에 상영했는데, 쇼브라더스사에서 만든 홍콩무협영화들이 홍콩은 물론 아시아각국에서도 큰 관객몰이를 하며 흥행에 큰성공을 거두던 시기였다.

 

홍콩의 쇼브라더스사에서 무협영화를 만들면 대만, 싱가폴, 우리나라, 일본, 말레이시아에서 그 무협영화들을 상영해서 흥행에 성공시켜 나갔으며 쇼브라더스사의 무협영화들은 아시아각국의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각광을 받던 시기가 60~70였다.

 

오늘날 한류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한국영화들이 아시아각국에서 큰 인기몰이를 하면서 흥행에 성공하는 것처럼, 60~70년대에는 홍콩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고, 홍콩이 최고의 영화선진국이었다고 보면 되고 그 중심에는 쇼브라더스사 있었다.

 

 

이렇게 홍콩의 검술무협영화들이 크게 각광을 받았던 60~70년대에 무협영화에 영웅으로 등장하는 홍콩배우들이 아시아의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남자배우로는 왕우, 로례(나열)이 대표적인 배우이며, 여자배우로는 리칭과 하리리, 정패가 단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리칭이 단연 최고의 인기를 끌었었다.

 

리칭은 쇼브라더스사에서 만든 로맨스영화 스잔나가 우리나라에서 상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여주인공 리칭은 청춘스타의 대명사로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리칭은 스잔나같은 멜로영화보다는 검객무협영화에 훨씬 더 많이 출연했었다.

 

이시기에 리칭과 더불어 홍콩에서 최고의 미녀여배우로 명성이 높았던 또다른 홍콩여배우가 바로 하리리이다. 하리리는 귀엽고 청순한 외모의 리칭과는 또다른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데. 하리리는 청순하면서도 글래머스한 매력을 진하게 풍기는 당대 홍콩의 최고의 글래머스타다.

 

60~70년대 당시 홍콩 쇼브라더스 소속여배우 중에서 최고의 미인여배우를 한명 꼽으라면 단연 하리리를 꼽을 수 있다. 그만큼 하리리는 60~70년대에 최고의 미녀여배우로 홍콩에서 명성을 날렸으며. 수많은 무협영화들에 주연으로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멜로영화에도 많이 출연해서 60~70년대 대표적인 홍콩미인의 아이콘 역할을 했다.

 

 

하리리는 ‘14인의 여걸’ ‘옥면비호’ ‘철관음’ ‘애노’ ‘처녀수첩등 그당시 꽤 인기가 높았던 유명한 작품들에 출연해서 인기와 명성을 이어나갔는데. 그중에서도 하리리가 가장 돗보였던 영화는 단연 봉비비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봉비비를 감상해보면, 일찍이 하리리처럼 얼굴도 예쁘고 검술연기도 잘하는 여배우는 처음봤다는 감동과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토록 청순하고 아름다운 미모의 여배우가 저토록 험악하고 난해한 검술액션을 멋지고 화려하게 펼치다니! 정말 하리리의 검술액션을 보면 눈이 부실 정도이며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못지않게 뛰어난 연기력에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영화 봉비비에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 남궁진은 우리나라의 배우 남석훈이다. 60년대에 한국에서 신필름소속 배우로 활동하다가 홍콩으로 건너가 한홍합작무협영화에 전문적으로 출연했던 남석훈이 영화 봉비비에서 하리리의 언니를 죽인 원수로 분해 특유의 능글능글맞은 바람둥이 배역을 잘 소화해주었다.

 

 

미모에서 결코 리칭보다 뒤지지않는 70년대 당시 최고의 홍콩 글래머스타인 하리리가 펼치는 눈부신 검술액션과 의리와 정의가 넘쳐흐르는 재미있는 영화 봉비비를 한번 감상해보자!

 

 

하리리, 남석훈 주연의 영화 봉비비동영상

 

  1부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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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의 한국 최고의 미인여배우 문희의 영화, 나이, 트로이카

 

 

배우 문희 - 현 백상재단 이사장

(1947716~ )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가장 많이 발전했던 시기로서 영화가 가장 인기 좋았던 시기는 단연 60년대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 우리나라 영화는 우리사회의 가장 인기 높았던 트랜드중 하나였고, 이러한 시기에 뛰어난 배우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60년대에 남자배우로 신영균, 김진규, 남궁원, 신성일이 인기가 높았고, 이 시기에 영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여자주인공으로 인기가 높았던 여배우들은 김지미, 윤정희, 문희, 그리고 남정임 등이 있다.

 

  60년대의 문희 사진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전반까지 한국영화의 여주인공으로서 맹활약했던 3명의 미녀여배우들을 우리는 트로이카라고 부른다.

 

50년대에서 60년대 전반까지 한국의 고전적 미녀여배우로 군림했던 최은희, 김지미의 뒤를 이어 그 이후의 시대를 가장 화려하게 수를 놓았던 세명의 트로이카 여배우들인 윤정희, 문희, 남정임은 서로 경쟁적으로 많은 영화들에 출연해서 자신들의 주가를 높여나갔으며.

대중들은 이들 미녀 3인방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로맨스영화들을 보며 뜨거운 환호와 갈채를 보내며 즐거움을 만끽했었다.

 

   60년대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렸던 문희와 윤정희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전반까지 이들 미녀여배우 3인방은 어느 누가 일방적으로 더 앞선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각각 세명의 여배우들이 골고루 높은 인기와 명성을 이어나갔으며, 이당시 한국영화들은 이들 미녀3인방의 뜨거운 연기경쟁으로 후끈하게 달아오르면서 재미있고 알찬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우라나라 영화산업이 가장 번창해나갔으며 한국영화의 중흥기라고 불리워졌던 시기는 60년대에서 70년대 전반까지라고 하는데, 작품성이 뛰어난 한국영화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미인여배우는 과연 누구였을까?

 

 

윤정희, 남정임, 문희, 세명의 트로이카 여배우중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여배우를 굳이 꼽자면, 바로 문희를 꼽을 수가 있다.

물론 사람마다 미인을 보는 주관적인 시각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윤정희나 남정임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차원은 주관적이 아닌, 가장 객관적인 미인으로서는 문희를 꼽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에 한 예능방송에 출연했던 원로탤런트 이순재씨는 이들 미인 3인방과 동시대에 영화를 함께 찍었던 산증인이었는데. 이순재씨는 이들 미녀 3인방 중 가장 예뻤던 미인은 바로 문희라고 말했다.

그당시 문희의 미모는 눈부셨으며, 마치 조각으로 빚어놓은 듯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었다고 하며, 그당시 충무로 영화계인사들도 문희가 가장 예쁘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60년대에 서구적인 빼어난 미모로 수많은 로맨스, 청춘영화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수많은 한국남성팬들의 가슴을 한없이 설레이게 했던 한국 최고의 미인은 바로 문희라고 할 수 있다. 문희의 미모는 다른 여배우들과는 차원이 달랐으며.

오똑한 콧날과 크고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 야무지게 닫혀진 앵두같은 잎술 등 그녀의 눈부신 미모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하염없이 빠져들어가게 만드는 신비로운 마력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문희는 한국뿐만 아니라 그당시 아시아의 최고의 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초특급 미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가 왜 60~70년대 전반 한국 최고의 미인인지는 문희의 지금의 모습을 보지말고, 60년대 그녀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를 감상해보면 금방 공감이 갈 것이다. 왜 그녀가 한국 최고의 미인인지를 ~

 

 

문희는 65년 영화 흑맥으로 데뷔했으며, 그후 영화 초연’ ‘초우’ ‘빛과 그림자’ ‘섬마을 선생’ ‘미워도 다시한번’ ‘꼬마신랑’ ‘별난여자’ ‘청춘무정등 수많은 명작품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누리다가 73년 한국일보 장강재사장과 결혼함으로써 연예계를 완전 떠나게 된다.

 

  60년대 콤비를 이루어 많은 로맨스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신성일과 문희

 

배우 문희가 65년도부터 72년도까지 출연한 영화는 총 300편이라고 하며, 1년에 무려 40편이 넘는 영화들을 찍었다고 한다. 1년에 40편이 넘는 영화를 찍었다고 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 수 없으며 당시 문희의 인기와 명성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문희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그녀의 연기는 혼을 불사르는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여 주었으며, 문희는 66년도에 대표적인 미남배우 신성일과 함께 영화 초우에 출연했는데, 영화 초우문희는 청순한 아름다움과 뛰어난 연기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던 당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받는 영화이다.

젊었을 때의 문희가 왜 트로이카 중 가장 예쁜 미인인지는 이 영화 초우를 한번만 감상해봐도 금방 공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문희가 67년도에 신영균과 함께 출연한 영화 미워도 다시한번은 대중들에게 큰 감동과 환희를 안겨다주었던 60년대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히는데. 문희의 뛰어난 연기력이 크게 돗보였던 작품으로 대중들의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무려 영화가 3부까지 리메이크되어 제작되었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었다.

 

 

언제 시간 나시면, 파일 판매사이트에서 영화 초우의 동영상을 다운받아서 한번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영화 자체도 그 내용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문희의 눈부신 미모와 절정의 연기력을 감상해볼 수 있는 귀한 작품이다.

 

60년대 영화제작 기술이나 환경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속에서 이정도의 뛰어난 걸작품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며, 특히 문희의 신들린 듯한 연기와 미모는 극찬을 해도 부족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정말 당시 우리나라의 국력이 약해서 이렇게 훌륭한 영화들이 외국에 알려지질 않았지만, 미국의 왠만한 허리우드영화보다 더욱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문희의 실감나는 연기와 눈부신 미모는 허리우드의 미녀여배우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문희는 73년 영화 씻김불을 마지막으로 촬영한 후 한국일보의 장강재회장과 결혼했으며. 이후 영화에서 완전 은퇴하고 가정주부로만 살아가게 된다.

문희와 남편 장강재회장과의 만남은 좀 특별하다고 한다. 문희는 SBS '좋은아침'에 출연해서, 영화 연인의 길에 여주연으로 촬영하고 있었을 당시에 장강재사장을 처음으로 만나게된 일화를 소개했다.

 

문희가 영화 연인의 길을 촬영을 시작했을 당시에 어떤 남자가 매일같이 집으로와서 자신을 차에 태우고 촬영장까지 운전해주었다고 한다. 문희는 그 운전하는 남자가 누군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별 관심을 갖지않았다고 한다.

그냥 영화사에서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주기 위해 운전기사와 차를 제공해준 줄로만 알고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을 매일같이 차로 데려다준 사람이 한국일보 장강재사장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장강재사장은 무척 수줍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회장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 연인의 길의 제작금을 대주었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장회장과 문희는 영화제작자와 여배우로서 처음 만나게 되었으며, 그것을 계기로 두사람은 사랑을 꽃피우게 되었고, 73년 결혼식을 올리고 22년 동안 해로하면서 함께 살아왔는데. 93년 장강재회장이 간암으로 사망함으로써, 문희는 홀로 남게되었다고 한다.

남편이 47세의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사망하고 난후 문희는 자신이 남편 내조를 잘못해서 남편을 일찍 보냈다는 죄책감과 상실감 때문에 몇 년동안 일체 바깥출입을 삼간 채 칩거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장강재회장과 현재의 문희 사진

 

현재 문희의 나이는 69세로 장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외부활동을 활발히 전개해나가고 있으며, 백상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문희는 후배이자 대장금의 주인공인 이영애와도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이영애는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미녀여배우인데. 60년대의 미녀여배우였던 문희와 2000년대 미녀여배우이자 후배인 이영애가 매우 친한 선후배관계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작년 방송에 출연했던 문희는 전화를 걸어 이영애를 즉석에서 불러냈으며, 한 단골음식점에서 만난 문희와 이영애와 스스럼없이 소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며 선후배의 정을 나누며 담소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현재의 문희 사진

 

문희는 이영애와 가끔씩 만나서 술도 함께 마시고,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한 선후배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문희와 이영애의 만남은 8년 정도나 계속되고 있다고 하니, 두사람은 정말 매우 친하게 지내는가 보다!

 

아래 동영상은 문희가 20141월경 한 방송에 출연하면서 공개한 문희의 저택 모습이 담겨있다. 재벌가에 시집갔던 문희의 집은 별로 화려하지도 않으면서도 매우 깔끔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문희의 집 공개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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