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ookie_domain: 'auto', cookie_flags: 'max-age=0;domain=.tistory.com', cookie_expires: 7 * 24 * 60 * 60 // 7 days, in seconds }); 티라노의 보물 :: ‘서프라이즈’ 루이16세 사망원인, 숫자 21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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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TV 서프라이즈’ 675, 프랑스왕 루이 16세 단두대 처형비극, 로베스 피에르

 

 

 

프랑스왕 루이16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비참한 최후을 맞았던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위에서 쫒겨난 것도 모자라 혁명군이 주도했던 재판을 통해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고만 정말 비운의 왕이었다.

 

루이16

 

그런 루이16세가 생전에 숫자 ‘21’을 몹시 두려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내려오고 있다. 루이16세가 왕이 되기 이전에, 아버지와 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에 오르게 된 연유가 있다고 한다.

그의 할아버지이지 선왕인 루이15세는 신통한 점술가를 왕궁으로 불러서 미래의 일을 점쳐보도록 주문했다고 한다.

 

점을 친 점술가는 루이15세의 뒤를 이어 손자(루이16)가 프랑스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해주었는데, 한가지 중요한 주문을 해주면서 조심하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것은 앞으로 왕이될 루이16세에게는 숫자 ‘21’이 매우 불길하게 작용하게 되므로 숫자 ‘21’을 피하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 루이16세와 상극의 관계에 있는 숫자 21이 루이16세에게 큰 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말은 전해들은 루이15세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루이16세의 아버지와 형이 병으로 먼저 사망하게 되었고 왕의 계승자로 손자 루이16세가 내정되자, 그점술가의 예언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을 깨닫게 되었다.

루이15세는 왕세자가 된 루이16세에게 숫자 21이 재앙을 가져다줄 수 있으니. 무조건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1774년 할아버지 루이15세가 사망하자, 루이16세는 새로운 프랑스국왕으로 왕위에 올랐다그런데 루이16세는 왕위에 오르는 순간부터 불운한 일들이 계속 발생했다고 한다.

 

루이16세가 왕이 된 시기는, 그의 나이가 21세가 되던 해로서 점술가가 크게 조심하라고 경고한 숫자 ‘21’과 맞아떨어지고 있었다루이16세는 왕이 되던 날로부터 불운을 가져다줄 숫자 21일과 일치했던 것이다.

 

 

매우 불길한 징조를 직감한 루이16세는 왕위 대관식이 열리고 왕립학교에서 열린 축하식에 참석했는데, 그날 따라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거센 빗줄기가 몰아치자, 학생대표가 축사를 낭독하는 도중에 그냥 왕궁으로 되돌아와버리고 만다. 불길한 숫자 21을 크게 의식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루이16세는 학생대표가 낭독하는 축사를 외면한 채, 축하식이 끝나기도 전에 왕궁으로 돌아와버린 것이다.

 

왕위 대관식은 그 나라에서 가장 중대한 행사이었에도 불구하고 축사낭독 도중에 새로 부임한 왕이 그냥 왕궁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축하식에 참석했던 수많은 대신들과 귀족들, 그리고 축사를 낭독했던 학생대표에게 심한 모욕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옹졸하고 졸렬한 왕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연출한 것이다.

 

그리고 루이16세가 왕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한차례 불길한 일이 터지고 만다. 프랑스왕국에 예속되었던 여러 재후국들의 제후들이 루이16세를 찾아왔는데, 그 제후들은 루이16세에게 여러 왕족들이 빌려간 빛을 대신 갚아줄 것을 강력히 요구해왔다고 한다.

 

 

오를레앙공작, 프로방스백작, 아르투아백작등 수많은 왕족들이 여러지역의 제후들에게 큰 부채를 지고 상환을 하지않는 사태가 발생한다그러자 이들 제후들은 프랑스왕 루이16세를 찾아와서 빚갚을 능력을 상실한 이들 왕족들의 부채를 국가에서 대신 갚아줄 것을 요구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루이16세에게 부채상환을 요구한 제후들이 공교롭게도 21명이었다고 한다. 루이16세에게 저주를 내린다는 숫자 21과 또다시 일치하고만 것이다. 21의 숫자에서 크게 공포감을 느꼈던 루이16세는 그만 제후들의 부채상환 요구를 수용하고 만다.

 

또한 루이16세의 악운은 이게 끝이 아니었는데, 할아버지왕 루이15세는 국채를 무분별하게 발행해서 40억 리브르 이라는 커다란 빛을 지고 있었고 이러한 거액의 부채는 손자인 루이16세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이러한 거액의 부채는 결국 프랑스왕국의 재정을 파탄상태로 이끌게 되었으며, 나중에 루이16세를 엄청난 비극으로 몰아가게 된다.

 

프랑스왕족들이 도박과 사치를 즐기기 위해 진 거액의 빛과 선대왕이 발행한 국채 상환등으로 프랑스재정이 고갈상태에 놓이자, 루이16세는 재정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서 세금을 대폭적으로 인상하게 된다.

 

 

이렇게 세금이 크게 인상되자, 프랑스백성들이 크게 분노하고 루이16세를 원망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된다.

가득이나 신분차별 때문에 큰 사회적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백성들은 엄청난 세금폭탄을 맞고 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게 되었고, 이것이 프랑스대혁명을 가져오는 단초로 작용하게 된다.

 

1789년 마침내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했으며 성난 농민군대는 왕궁으로 쳐들어갔다. 농민군대의 강력한 공격을 당한 왕궁수비대는 지리멸렬했고 불안감을 느낀 루이16세는 가족들을 데리고 몰래 베르사이유궁전을 빠져나가 프랑스국경 부근 바렌느숲속으로 도망가다가 결국 혁명군에 체포되고 민다.

그런데 루이16세가 혁명군에게 체포된 날이 하필이면 1791621일로서 공교롭게도 숫자 21일이 또다시 일치하고 만다.

 

루이16세에게 저주를 내린다고 하는 숫자 21은 어김없이 루이16세에게 재앙을 불러오고 있었다.또한 혁명세력인 국민공회는 왕정을 페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한 날도 1792921일로 역시 숫자 ‘21’이 또다시 일치하고 있었다.

 

 

 

그후 루이16세는 법정에 끌려가 치욕스러운 공개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루이16세의 처형을 강력히 주장했던 인물은 로베스 피에르였다.

로베스 피에르는 루이16세가 왕이 되던 대관식날 환영식 축사를 낭독했던 왕립학교의 대표학생이었다. 대관식날 로베스 피에르가 환영식 축사를 낭독하는 도중 루이16세가 그냥 왕궁으로 되돌아감으로써 그에게 심한 모욕감을 안겨준 것에 대한 복수였는지는 모르지만, 로베스 피에르는 가장 강력하게 루이16세의 단두대 처형을 주장했다.

 

로베스피에르

 

국민공회를 이끌던 수장 로베스피에르가 루이16세의 사형을 주장하는 연설을 11차례나 행함으로써 그에 대한 사형을 관철시키게 된다.

 

루이16세가 처형당했던 단두대 또한 처음 만들어진 날짜도 공교롭게도 1790121일이었으며 그당시 왕이었던 루이16세가 단두대사용을 허가해주었다고 한다. 루이16세는 자신이 허가했던 단두대에서 자신이 교수형당하는 신세가 된다.

 

루이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던 날도 1793121일로 숫자 21일이 어김없이 들어가 있었다루이16세는 평생동안 숫자 21을 두려워해서 피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숫자 21의 저주를 극복하지 못하고 바로 21일날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루이16세와 숫자 21의 저주는 정말로 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는데, 과연 루이16세가 21의 저주 때문에 사망한 것이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을 뿐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뭔가 숫자 21에 분명 놀라운 미스테리가 숨겨져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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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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