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ookie_domain: 'auto', cookie_flags: 'max-age=0;domain=.tistory.com', cookie_expires: 7 * 24 * 60 * 60 // 7 days, in seconds }); 티라노의 보물 :: '사랑방 이야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20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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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독일 구마행위 한국인여성 살해사건의 전모, 퇴마의식 실제

 

 

 

그것이 알고싶다’ 1014회에서는 201512월초 독일에서 발생한 구마의식으로 인한 한국여성 사망사건을 다루어서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주고 있다.

 

엑소시스트검은사제들과 같은 영화속에서나 나올법한 엽기적인 구마의식(퇴마의식)이 현실에서도 실제로 벌어졌다고 한다. 독일 푸랑크푸르트의 한 호텔에서 한국인 세가족이 구마의식을 벌어다가 40대의 중년여성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2015125,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특급호텔에 투숙했던 한국인들 일행이 구마의식(퇴마의식)을 벌였다고 하며, 그과정에서 한 중년여성에게 집단폭력이 가해져서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구마의식을 벌여서 중년여성을 살해한 일당은 한국에서 6주 전에 독일 푸랑크푸르트로 이주해온 한국인 세가족 일행이라고 해서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또한 구마의식에 동참해서 중년여성을 살해한 일당에는 그녀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끔찍한 소식이다.

 

구마의식(퇴마의식)이란 어떤 사람에게 악령이나 귀신이 씌워졌을 경우에 그 사람몸속에 들어있는 악령을 내쫒기 위해서 행하는 종교적인 의식행위이다.

우리는 영화속에서 가끔씩 이런 구마의식을 행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영화 엑소시스트와 한국영화 검은사제들이 그 대표적인 영화이다.

 

 

2015124일 독일 푸랑크푸르트의 한 특급호텔에 40대여성 2명과 그자녀들 4명등 총 6명의 한국인일행이 찾아와서 투숙을 했다고 한다.

 

이들 한국인일행은 그다음날인 125일날 아침 830분경에 한인교회의 목사를 그호텔객실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한인교회의 목사가 다녀간 직후에 40대 중년의 여성이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든 상태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40대여성은 함께 투숙했던 김씨일행으로부터 악령을 쫒아낸다는 명목으로 2시간 동안 집단 구타를 당한 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40대여성에게 집단구타를 가한 일행에는 그녀의 15살난 아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엄청난 충격을 주고있는 것이다.

 

2015125일에 발생한 푸랑크푸르트 한국인 집단구타살해사건은 아마도 2015년도에 발생했던 사건 중에서 가장 엽기적이면서 가장 충격적인 살인사건이라고 불리워질만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독일경찰에 의해서 체포된 5명의 김씨일행은 자신들은 사람을 살해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단지 악령을 퇴치하기 위해서 구마의식(퇴마의식)을 행한 것이지, 살해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의 시신을 바로 앞에 놔두고도 자신들의 살해행위를 인정하지 않고있으며. 사람이 죽었는데도 이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너무나도 당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 김씨일행은 무슨 이유로 한국이 아닌 독일 푸랑크푸르트의 호텔에서 이처럼 엽기적인 구마의식을 벌였던 것일까? 정말로 이들 김씨일행은 숨진 40대여성에게 구마의식을 행했던 것일까? 아니면 계획적인 살인행위를 했던 것일까?

 

이날 푸랑크 푸르트의 호텔에서 집단폭행을 당해서 숨진 여성은 40대 중반의 이미라씨라고 하며, 그녀는 아들, 남편 그리고 김씨일행들과 함께 독일 푸랑크푸르트로 아들유학을 위해 이주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라씨에 대한 구마의식을 주도했던 44세의 중년여성 김씨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데리고 이들 일행과 함께 독일로 유학을 왔다고 한다.

 

원래 김씨가족 3, 이미라씨가족 4, 민지영씨가족 3명 등 총 10명이 6주전에 한국으로부터 독일로 유학을 위해서 이주해왔다고 한다. 

자녀들의 유학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독일로 함께 집단으로 이주해왔던 이들 세가족집단은 독일로 온 지, 6주 만에 끔찍한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사건은 현재 독일 푸랑크푸르트의 언론과 한국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고있다청운의 꿈을 품고 독일 푸랑크푸르트로 유학을 온 세가족 집단의 엽기적인 구마의식과 살인사건의 원인과 전모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숨진 피해자 이미라씨와 죽기직전에 간신히 구출된 민지영씨는 원래 한국에서 같은교회에 다녔던 평범한 기독교신도들이라고 한다. 모두가 40대 중반인 이들 이미라씨와 민지영씨는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내왔다고 한다.

 

이미라씨와 민지영씨는 다른 교인들이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무척 친하게 지내왔다고 하는데, 이 두사람 사이에 새로운 교인 김씨가 끼어들면서 새로운 반전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같은 교회에 다니며 친하게 지냈던 이씨와 민씨는 교회목사의 소개로 새로운 교인 44세의 김씨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사업의 실패를 겪고 전재산을 날리고난 후, 남편과는 이혼한 상태로 아들과 딸을 혼자서 어렵게 키우고 있었다고 한다. 교회의 건너편빌딩에서 월세방을 얻어서 살고있었던 김씨는 월세를 내지못해 밀리게 되어, 목사님을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김씨는 간신히 목사님의 도움으로 새로운 방을 구해서 살 수 있게 되었으며, 목사님은 이런 김씨를 이미라씨와 민지영씨에게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라씨와 민지영씨는 자신의 아들교육과 유학에 관해서 관심을 갖고있었다고 하는데. 이들에게 독일유학을 권유한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고 한다.

 

이미라씨와 민지영씨에게는 자신의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독일유학을 주선해주고, 독일유학에 필요한 모든 준비와 절차를 제공해주고 도움을 준 김씨를 절대적으로 신임하게 되었으며.

특히 남편과 사별한 지 얼마 안되는 민지영씨는 김씨를 하늘에서 내려보내준 수호천사처럼 여길 정도로 신뢰했었다고 한다.

 

세명의 주부 이씨, 민씨, 김씨는 세가족이 함께 독일유학을 가기로 합의했다고 하며, 독일유학과 이주에 필요한 모든 것은 김씨가 도맡아서 척척 해냈다고 한다.

 

 

20151028일 이씨가족과 민씨가족, 그리고 김씨가족은 함께 집단으로 독일유학길에 올랐다고 하며, 독일 푸랑크푸르트의 슐츠바흐주택가의 한 임대주택에 거주하면서 독일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녀들의 미래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더나은 교육을 받게해주기 위해서 똘똘 뭉친 세가족은 독일로 이주해온 후 일주일 동안은 무척 행복했고 평온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세가족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게된 계기는 느닷없이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이들 세가족이 살고있던 슐츠바흐주택가의 임대주택집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고 하며. 특히 김씨가 주동이 되어서 그주택집이 귀신에 씌었으니, 서둘러 이사해야한다고 주장을 했다고 한다.

당시 독일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던 이씨가족과 민씨가족은 독일 생활을 관해서 전적으로 김씨에게만 의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씨 없이는 독일생활을 전혀 해나갈 수 없었던 이씨, 민씨 그리고 가족들은 김씨의 주장에 반발할 처지가 못되었다고 한다. 김씨가 주장하는 데로, 김씨가 시키는 데로 무조건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들 세가족으로 구성된 집단에서 김씨는 사실상 독재자처럼 군림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씨의 주장에 의해서 임대주택에서 빠져나온 세가족 일행은 이때부터 집도 없이 호텔을 전전하는 생활을 해나갔다고 한다. 집도 없이 절도 없이 이호텔에서 저호텔로 전전하면서 지내왔다고 하는데, 그과정에서 또다른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김씨가 느닷없이 피해자 이미라씨의 둘째아들과 민지영씨의 둘째아들에게 귀신이 씌웠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김씨가 귀신이 씌웠다고 주장하면 그사람은 이 집단에서 추방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집단에서 사실상 독재자처럼 군림하고 있는 김씨가 귀신이 들렸다고 지목했던 이미라씨의 둘째아들과 민지영씨의 둘째아들은 13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다시 되돌려 보내졌다고 한다.

 

그런데 김씨의 횡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두명의 남의 아들들을 한국으로 되돌려보낸 후에 김씨는 이번에는 41세의 민지영씨에게 귀신이 씌였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김씨가 귀신이 씌었다고 지목된 그 사람은 그 집단내에서는 공공의 적으로 전락하게 된다. 느닷없이 김씨로부터 귀신이 씌웠다고 지목된 민지영씨는 그집단에서 쫒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세가족집단이 독일로 이주해올 때 필요한 모든 경비를 부담한 사람은 다름아닌 민지영씨라고 한다.

 

독일유학을 주도했던 김씨는 단 돈 한푼도 부담하지 않았다고 하며. 얼마전 사망한 남편으로부터 집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경제적으로 윤택했던 민지영씨가 이들 세가족들의 독일이주와 임대주택 비용등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지불했다고 한다.

 

 

민지영씨의 돈 14천만원이 임대주택 비용으로 김씨의 아들계좌로 들어갔다고 한다. 김씨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돈부담을 계속 나중으로 미루고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가족의 독일정착비용의 대부분을 지불했던 민지영씨를 김씨가 귀신이 씌웠다는 명목으로 일가친척도 없는 독일 푸랑크프르트에서 내쫒아버린 것이다.

 

김씨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않는 사람들을 골라서 귀신이 씌웠다는 명목을 내세워서 추방해버리곤 하는 것이다. 김씨는 이런 방법으로 벌써 3명의 사람들을 추방하고 내쫒았던 것이다.

 

김씨가 한번 귀신이 씌웠다고 주장하면, 그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녀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 김씨에게서 귀신이 들렸다고 지목당한 사람은 곧바로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어서 집단구타를 당하거나, 쫒겨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민지영씨의 15살난 아들마저도, 김씨의 주장에 따랐다고 하며. 자신의 엄마인 민씨를 추방하는 데도 덤덤하게 따랐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김씨는 이들 집단내에서는 사이비종교집단의 교주처럼 대우받고 권위를 행사했던 것처럼 보인다. 구성원들 모두가 김씨의 말 한마디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김씨가 초기정착비용을 모두 부담했던 민지영씨를 쫒아낸 것은 아마도 민지영씨에게서 더 이상 얻어낼 만한 이익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쉽게 말하면 민지영씨에게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뽑아먹고 난후, 이제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어진 그녀를 토사구팽했다고 보여진다.

 

 

김씨에게서 쫒겨난 민지영씨는 이미라씨가 호텔에서 숨진 그 같은날, 이들이 먼저 살았던 슐츠바흐의 집 차고에서 쓰러진 채로 경찰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김씨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난 후 빈털터리가 된 민지영씨는 김씨에게서 추방당한 후에, 자신들이 전에 살았던 슐츠바흐의 임대집으로 갔으며 그집 차고에서 2일 동안이나 탈진상태로 쓰러져있었다고 하며, 만일 경찰에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벌써 숨을 거두었을 것이라고 한다.

박목사의 신고와 경찰의 출동으로 민지영씨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김씨는 벌써 세사람을 자기집단에서 쫒아냈는데, 그후 그녀가 제거해야할 또다른 사람에게 귀신이 들었다고 지목한 것이다. 김씨는 124일 푸랑크푸르트의 한 호텔에 투숙하자 마자, 이번에는 이미라씨에게 귀신이 씌웠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김씨는 며칠전에 이미라씨의 남편에게 한국에서 미처리된 일을 처리하게 하려고 한국으로 보내버렸다고 한다.

남편을 미리 한국으로 보내고 난 후, 김씨는 푸랑크푸르트의 한 호텔에 들어선 후 이미라씨에게 귀신이 들었다고 지목하면서, 이씨에 대한 구마의식(퇴마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김씨가 주도했던 구마의식으로 김씨의 아들과 딸, 피해자 이미라씨의 15살난 아들, 민지영씨의 15살난 아들, 이렇게 다섯명이서 귀신이 씌웠다고 누명을 쓴 이미라씨를 강제로 객실바닥에 누인 상태로, 가슴과 배를 집중적으로 압박하고 구타를 했던 것이다.

 

125일 아침 이들 5명의 김씨일행은 이미라씨에게 2시간 동안 계속해서 구타를 행했다고 한다. 5명의 김씨일행은 집중적인 구타를 당했던 이미라씨는 온몸에 심한 멍자국을 남긴 체, 끝내 사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과정에서 김씨는 어쩐일인지, 한인교회의 박목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호텔로 찾아와달라고 요구했으며. 박목사가 이들이 있는 객실로 들어섰을 때에는 이미 이미라씨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있었다고 한다.

 

호텔로 들어온 박목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병원에 구조전화를 하려고 하자, 김씨는 전화를 못하고 막았다고 한다. 김씨는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병원치료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쳤다고 한다.

 

호텔객실에서 뛰쳐나온 한인교회 박목사는 황급히 독일경찰에 전화로 신고했으며. 독일경찰이 그 객실로 진입한 후에 김씨일행의 살인행각의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경찰이 그호텔 객실로 들어서고 난 후에도 김씨와 일행 다섯명은 구마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

객실바닥에 눕혀져있는 이미라씨의 온몸에는 시퍼렇게 멍자국들이 나있었다고 한다. 이미라씨에게 구마의식 차원에서 집단구타를 가한 사람가운데는 숨진 이미라씨의 아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15살난 이미라씨의 아들은 아직도 자신의 엄마가 숨진 것이 아니라고 믿고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엄마가 눈앞에서 죽어있는데도 전혀 동요도 하지않았고. 매우 담담한 표정을 하고있었다고 한다.

 

현재 주동자인 김씨와 그일행 등 5명의 한국인은 1급살인죄로 체포되어 독일검찰로부터 구속기소된 상태라고 한다. 만일 독일법원으로부터 살인죄로 유죄판결이 날 경우에는 5명 모두가 독일교됴소에서 종신형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이미라씨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은 바로 김씨다. 김씨가 구마의식을 수행하기위해서 이미라씨를 상대로 집단구타를 행했는지, 아니면 계획적으로 이미라씨를 살해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독일법원에서 곧 재판을 통해서 이미라씨에 대한 김씨일행의 살인죄여부가 판정이 날 것이다.

 

그렇지만 김씨가 행한 여러가지 행동을 세밀히 살펴보면, 김씨가 행한 구마의식은 종교적인 신념에 의해서 행한 것이라기 보다는, 집단의 구성원들을 자기맘대로 조종하기 위해서 부린 통제수단이라고 느껴진다.

 

, 김씨는 자기집단의 구성원들을 자기뜻대로 통제하기 위해서 거짓된 구마의식을 행해서 자기 맘에 안드는 구성원들을 제거해나갔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씨가 주동이 되어 벌인 구마의식(퇴마의식)은 그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집단최면으로 작용해서, 김씨 자신의 말에 절대복종하게 만드는 하나의 통제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처음에 빈털터리였던 김씨는 자신보다 경제력이 좋았던 두여성 즉, 이미라씨와 민지영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독일유학이라는 미끼를 던져서 그녀들을 이역만리 먼 유럽으로 끌고간 후에, 그녀들의 돈을 모두 갈취한 후에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그녀들과 그녀의 가족들을 구마의식이라는 집단최면을 통해서, 하나둘씩 제거해 버려나갔다고 판단할 수 있다.

 

만일 김씨의 살인행각이 경찰에 들통이 나지않았다고 한다면, 김씨는 계속해서 다른 구성원들을 똑같은 방식(구마의식)으로 제거해 나갔을 것이며, 최종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아들과 딸, 이렇게 셋만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가져왔던 돈은 모두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만 사용해버렸을 것이다.

 

김씨는 아주 잔인하고 표독스러운 살인마라고 느껴진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었던 친한 주변사람들을 오직 자신의 극단적인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서슴없이 죽이다니, 사람이 이렇게까지 악해질 수 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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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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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695, 영국 팝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죽음의 미스테리, 노래 'Rehab'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영국이 낳은 2000년대 천재뮤지션으로 손꼽히는 팝가수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06년 제2집 앨범 'Back To Black'을 발표하였는데, 소울음악을 현대적으로 완벽하게 재탄생시킨 타이틀곡 'Rehab'는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그녀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톱스타로 급부상하게 된다.

 

 

요즘 흔치않은 싱어송 라이터인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06년도에 발표했던 'Rehab', 'Back To Black', 'Love Is A Losing Game' 같은 명곡들이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하였고,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08년 그래미상 어워즈에서 5관왕에 오르면서 세계적인 천재음악가로 공인받는 계기가 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독특하게 말아올린 헤어스타일과 몸 곳곳에 새겨넣은 문신, 화려하면서도 엽기적인 의상패션 등의 그녀만의 독특하고 개성짙은 컨셉으로 대중들의 눈길을 확 사로잡아버리는데, 특히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그녀만의 칼칼하고 멋진 그녀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의 소울과 리듬앤 블루스를 완벽하게 부활시킨 당대 최고의 뮤지션으로 평가받고 있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08년도에 인기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영국 최고의 뮤지션으로 큰 인기를 끌고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최고의 뮤지션으로 각광받았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자신은 가까운 시기에 죽게될 것이라고 예상을 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혀있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최정상급 인기를 누리고있었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놀랍게도 자신은 ‘27세 클럽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믿음을 갖고있었으며, 27세가 지나기 전에 사망하게 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갖고있었다고 한다.

 

‘27세 클럽의 저주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세계적인 높은 인기를 끌었던 톱스타가 두려움에 벌벌 떨어야만 했던 것일까?

‘27세 클럽의 저주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춘 뮤지션들이 27세가 되면 악마의 저주를 받아서 사망하게 된다고 하는 일종의 신화이자 루머이다.

 

 

실제로 로버트 존슨과 롤링스톤즈의 리더 브라이언 존스, 지미 헨드릭스, 도어스의 리더 짐 모리슨,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등 천재적인 뮤지션들이 ‘27세 클럽의 저주를 받아서 모두가 27세에 돌연 사망했다고 한다.

 

이들 유명가수들은 젊은 나이에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모두가 자신의 노래를 직접 작곡하는 등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었으며.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함으로써 천재뮤지션으로 공인받았던 가수들이다.

 

그런데 악마의 시기를 받아서인지, 이들 천재뮤지션들은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전성기때에 갑자기 모두다 사망해버리는 불행을 겪고말았는데. 놀랍게도 모두다 27세에 사망했다는 공통점을 갖고있다고 한다.

 

 

‘27세 클럽의 저주를 받아서 사망했다고 하는 로버트 존슨은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38년도에 27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하게 되는데, 악마와의 계약기간이 27세였기 때문에 사망했다는 루머가 퍼져나가기도 했다.

 

그후 69년도에 롤링스톤즈의 리더인 브라이언 존스가 자신의 집 수영장에 빠져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으며, 사망할 당시의 브라이언 존스의 나이도 27세였으며, 그가 왜 사망했는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브라이언 존스도 ‘27세 클럽의 저주또는 악마의 저주 때문에 사망했다는 루머가 퍼지게 되었다.

 

천재적인 기타리스트라고 불리우던 지미 헨드릭스는 1970년 호텔에서 뚜렷한 원인없이 돌연 사망하게 되는데, 사망 당시의 그의 나이 또한 정확히 27세였다고 해서 큰 놀라움을 주고 있다.

지미 헨드릭스도 로버트 존슨이나 브라이언 존스처럼 ‘27세 클럽의 저주때문에 사망하게 되었다는 루머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도어스의 리더 짐 모리슨과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도 똑같이 27세의 나이에 모두 사망함으로써, ‘27세 클럽의 저주는 이제 기정사실처럼 굳어져버렸다고 한다.

 

 

이처럼 한시대에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천재적인 뮤지션들이 뚜렷한 원인도 없이 똑같이 2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27세 클럽의 저주를 실제 상황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08년도 그래미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톱스타의 반열에 오르자, 그 때부터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자신이 존경했던 천재뮤지션들이 모두 27세의 나이에 돌연 사망해버렸다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들 천재뮤지션들의 상황과 너무나도 닮았다고 판단했으며,

자신도 이들 천재뮤지션처럼 ‘27세 클럽의 저주를 받아서 머지않아 죽게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이렇게 ‘27세 클럽의 저주에 관한 루머가 크게 확산되어나가자, 호주의 퀸즐랜드대학 연구팀에서 그 진위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고 한다.

 

호주 퀸즐랜드연구팀이 조사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50년대부터 2008년도까지 크게 활동했던 유명한 가수들 1,040명을 조사했는데, 이들 중 27세의 나이에 사망했던 가수는 단지 7%밖에 안된다고 한다.

호주 퀸즐랜드연구팀에 의하면 ‘27세 클럽의 저주는 사람들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루머일 뿐이며. 진실이 결코 아니라고 판단했다.

 

27세에 사망했던 천재뮤지션들 대부분이 심한 알콜중독이나 마약중독에 빠져있었으며, 혈기왕성한 젊은나이였던 이들 뮤지션들은 기행을 일삼거나, 극단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생명을 스스로 단축시켰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브라이언 존스나 그룹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은 극심한 알콜중독에다 약물중독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퀸즐랜드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7새에 사망한 천재뮤지션들은 일부의 루머처럼 ‘27세 클럽의 저주때문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습관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08년도의 어느 시점부터 자신도 선배 뮤지션들처럼 곧 죽게될 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심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발표한 노래들이 세계적인 히트를 치고, 그녀의 명성과 인기가 계속 높아가자,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자신도 ‘27세 클럽의 저주를 받아 사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한탄했다고 하며, 하루하루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지냈다고 한다.

 

결국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3년 뒤인 2011년도에 영국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쓰러진 채 사망했다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평소에 자신이 예상했던 데로 27세에 숨을 거뒀다고 한다. 천재적인 선배뮤지션들처럼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정확히 27세의 나이에 사망함으로써 ‘27세 클럽의 저주가 마치 실현된 것처럼 되어버렸다.

 

 

 

과연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27세 클럽의 저주를 받아서 27세의 나이에 사망하게 된 것일까? 그런데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사인은 급성 알콜중독증이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알콜중독에 빠져있었다고 하며. 죽는 당일에도 술을 엄청나게 많이 폭음했다고 한다.

 

또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알콜중독 뿐만 아니라, 마약중독, 그리고 온갖 약물중독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자신의 콘서트를 하던 중에도 술을 마셔서 관객들에게 술주정을 부리며 싸움까지 벌였다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알콜중독과 마약중독에 찌들어서 살아갔으며, 남편과 2009년 이혼후에는 더욱 술에 많이 의존해서 살아갔다고 하며, 이같이 술과 약물에 빠져서 무절제한 생활이 그녀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켰던 것이다.

 

그녀의 알콜중독과 약물중독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고 하며. 2011723, 영국의 자택에서 술을 마신 채로 쓰러져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녀의 공식 사망원인은 급성 알코올 중독이라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천재적인 뮤지션이었지만, 자신의 사생활을 관리하는 데에는 완전 실패한 인물이었다.

 

 

그녀가 ‘27세 클럽의 저주에 빠져서 알콜중독과 약물중독에 빠지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 스스로 엄청난 양의 술과 몸에 해로운 각종 약물을 오남용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단축시켰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톱스타였지만, 자신의 생활습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인기와 부귀영화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녀는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었다고 본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Rehab 노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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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1012, 대동할매국수집 김춘자 실종살해사건, 용의자 사진

 

   

 

2009년도에 경남 김해에서 수억원대의 연매출을 올리는 잘 나가는 국수집의 여사장 김춘자씨의 미스테리한 실종사건이 발생했으며, 그녀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고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단돈 3천원만 있으면 달달하고 구수한 막국수를 제공해서 서민들로부터 큰인기를 끌었던 김춘자사장의 국숫집은 2009년도만해도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대박음식점으로 소문나 있었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의 막국수가 유별나게 맛있는 비결은 그녀만의 독특한 육수만들기에 있었는데. 김춘자사장은 고급멸치를 사용해서 정성들여 만든 육수를 사용해서 만든 국수는 서민들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아버렸다고 한다.

 

서울과 강원도, 그리고 하와이에서도 소문을 듣고 손님들이 찾아올 정도로 김춘자사장의 국숫집은 크게 번성한 대박집으로 소문나 있었는데. 이렇게 한창 장사가 잘되는 호황기에 김춘자사장이 갑자기 사라지는 미스테리한 실종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2009519일 아침 8시경 국수집으로 출근한 종업원은 먼저 출근해있어야할 김춘자여사장이 보이지않자,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는데, 항상 새벽 5시부터 출근해서 육수를 끓이고 있어야할 김춘자사장의 부재는 무척 불길한 예감에 빠져들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6년 동안 김춘자사장은 영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김해에서 국숫집 운영을 시작한 후 6년 동안 단한번도 결근하지 않았던 김춘자여사장이 최초로 결근한 것인데, 이것은 영원히 되돌이킬 수 없는 불길한 사건의 서막을 알리는 사고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후로 김춘자사장은 다시는 그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김춘자사장의 막국수도 다시는 맛볼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오직 국숫집운영에만 전념해왔던 김춘자사장이 그날 이후로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그녀의 가족들에게도 아무런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이 단순 가출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판단도 해보았지만, 하루매출 100만원을 올리는 잘 나가는 대박국수집을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며 그당시 누구보다도 국수집운영에 적극적이었던 김춘자사장이 아니었던가?

 

느닷없이 발생한 김춘자사장의 실종은 그녀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해주고 있다. 2009년 실종된 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의 아들과 딸에게 단 한번도 연락을 해오지않고 있는 상황은 그녀가 이미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춘자사장의 나이는 실종당시에 53세로 한창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나이였는데. 오직 국수집운영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왔던 김춘자사장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성격도 좋고 부드러워서 평소에 국수집손님들에게도 인기가 좋았으며. 남들과의 대인관계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던 그녀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발생해서 그녀를 영원히 사라져버리게 만들었던 것일까?

 

김춘자사장이 실종되기 전에 함께 있었던 종업원의 증언을 통해서 그녀의 마지막 행적을 살펴볼 수가 있다. 김춘자사장은 2009519일 오전 8시 이후로 그녀의 국수집에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종업원의 말에 의하면, 김춘자사장은 실종되기 하루전인 518일 오후 940분경까지 종업원과 함께 마지막손님의 국수를 포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10시경 김춘자사장은 평소대로 국수집을 나서서 자신의 승용차로 퇴근했다고 한다. 이것이 종업원이 마지막으로 본 김춘자사장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김춘자사장은 출근하지 않았고 영원히 그모습을 볼 수 없게된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8시경, 국수집에 들어선 종업원의 눈에 뭔가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었다고 한다. 항상 끓고있어야할 육수통은 텅텅 비어있었고. 김춘자사장은 모습을 보이지않았지만, 그녀의 자동차는 국숫집 옆에 세워져있었다고 한다.

 

음식점의 문을 열려있고. 사장의 자동차도 세워져 있었지만, 그 주인만 사라져버린 매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여종업원의 눈에 매우 미세한 차이점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김춘자사장의 자동차의 한쪽바퀴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고 한다.

6년동안 김춘자사장과 함께 일을 해왔던 종업원은 한번도 김춘자사장이 이런식으로 주차해놓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하며. 그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김사장의 차를 주차해놓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승용차를 대신 주차해놓은 사람이 김춘자사장의 실종에 깊숙이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CCTV영상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인물이 포착되었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의 실종사건 당일인 519일 새벽 147분경에 어떤 남자가 김춘자사장의 승용차를 몰고나타나, 국수집옆에 주차하고 사라지는 장면이 CCTV영상에 포착되었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의 무쏘자동차를 그녀가 아닌 다른 남자가 몰고와서 대신 차를 주차시키고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차를 몰고온 그남자가 김춘자사장과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김춘자사장의 차를 몰고왔던 그 남자가 김춘자사장을 사라지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경찰은 이 CCTV영상속의 남자를 집중 분석하였다고 하며.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경찰의 분석결과가 CCTV영상속의 남자의 모습을 정확히 판단해내지 못하는 데에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CCTV영상을 국과수에 보내서 정밀조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그런데 CCTV영상이 야간에 적외선카메라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그 남자의 모습을 정확히 확인하기가 힘들 정도로 화질이 안좋았으며. 더욱이 그 영상속 남자는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정확히 분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CCTV영상속의 남자가 평소에 국수집에 자주 왔던 단골손님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의 아들과 종업원은 그 CCTV영상을 보자마자, 그 남자는 국수집에 자주 왔던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임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트레일러기사로 차를 몰고다녔던 강두식은 1여년 전부터 국수집을 종종 찾아왔던 단골손님이라고 한다.

 

경찰은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을 강력한 용의자로 판단하고 그에 대해서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이 실종 하루전날 밤 퇴근 후에 차를 몰고갔던 방향이 강두식의 트레일러가 주차되어있던 주차장쪽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그후 김춘자사장의 차를 다시 몰고왔던 지역도 강두식의 트레일러 주차장쪽이었음이 CCTV영상을 통해서 확인되었다고 한다.

 

, 김춘자사장은 하루전날 밤 1030분경 국수한그룻과 과일을 갖고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서 강두식의 트레일러 주차장쪽으로 갔던 것이며. 그리고 그다음날 새벽 147분경 다른 남자가 김춘자사장을 대신해서 그녀의 자동차를 몰고와 국수집 옆에 주차해놓고 사라진 것이다.

김춘자사장의 자동차를 몰고와서 국수집에 주차해놓았던 그남자는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경찰은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을 체포해서 김춘자사장의 실종에 관해서 집중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강두식은 자신은 김춘자사장을 만나지 않았다고 강력히 부인했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CCTV영상 분석결과에서도 화면속 남자가 누구인지 확인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결국 강두식은 김춘자사장의 실종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춘자실종 및 살해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고 하며, 단지 자동차 불법사용에 대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1년의 징역형만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가장 강력한 용의자였던 강두식이 김춘자사장에 대한 살해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김춘자사장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이 비록 실종된 상태이지만, 가장 강력한 증거인 시신이 확보되지않았기 때문에, 강두식을 살해혐의로 처벌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춘자의 아들과 종업원은 CCTV영상속 남자가 강두식이라고 진술하였지만, 법원은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느낌을 살인혐의의 객관적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원에서는 김춘자 아들과 종업원의 증언보다는 강두식인지 식별불가하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검사결과를 더 중요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 개인적인 판단보다는 객관적인 검사기관의 검사결과를 받아들임으로써 강두식은 살해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며. 그는 단지 1년의 징역형만 살다가 출소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당시 경찰조사에서 강두식의 트레일러안에서 김춘자의 혈흔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의 혈흔이 강두식의 트레일러안에서 나왔다는 것은,

그녀가 실종되기 하루 전날인 518일 저녁 퇴근후에, 강두식을 트레일러안에서 만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트레일러안에서 강두식으로부터 어떤 물리적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두식은 경찰조사에서 김춘자와 관계를 맺던 중 김춘자사장이 코피를 흘린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김춘자국수집의 오랜 단골이자 트레일러기사였던 강두식은 여러가지 정황이나 증거를 놓고 볼 때, 김추자사장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은, 가장 강력한 살해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김춘자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음으로써, 운좋게도 자신의 살해혐의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누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김춘자사장과 강두식 사이에 중요한 단서가 하나 더 발견되었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이 실종되기 전, 계속해서 11개월 동안 강두식에게 돈을 송금해주었다고 하며. 그 송금한 금액은 무려 5천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김춘자사장과 강두식은 모종의 돈거래를 해왔던 것이다. 강두식은 자신에게 돈을 투자하면,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김춘자사장과 다른 여사장들을 상대로 해서 투자자금을 모았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이 강두식에게 송금했던 돈은 강두식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투자했던 자금으로 판단되는데, 아마도 이 돈을 김춘자사장이 되돌려받기 위해서 강두식을 찾아갔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김춘자사장에게 돈을 돌려주기가 불가능했던 강두식은 자신의 돈을 돌려달라고 독촉하는 김춘자사장을 제거해버렸던 것은 아닐까 하고 판단된다.

, 5천만원을 건네받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고 골치아픈 존재로 전락해버린 김춘자사장을 강두식은 눈에 가시처럼 생각했을 것이고. 계속해서 자신의 돈을 달라고 독촉하는 김춘자사장을 자신의 트레일러로 유인해서 살해하고,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곳에 유기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강두식의 트레일러안에서 검출된 혈흔은 강두식이 김춘자사장을 흉기로 살해하는 과정에서 묻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강두식이 김춘자의 승용차를 몰고왔던 정황. 김춘자가 실종되기 직전, 강두식이 김춘자와 여러차례 전화통화를 한 기록, 자신의 트레일러안에서 검출된 김춘자의 혈흔, 김춘자와 돈거래를 해왔다는 점 등 여러가지 정황증거들이 강두식을 유력한 살해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지만, 김춘자의 시신이 나오지 않음으로써 강두식은 법의 처벌을 받지않고 교묘하게 빠져나가버렸다고 한다.

 

현재 강두식은 사기혐의로 검거되어 교도소에서 복역중에 있다고 하며. 20164월 출소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경남 김해에서 뛰어난 음식솜씨와 성실성으로 인해 자신의 국수집을 가쟝 유명한 맛집으로 올려놓음으로써, 하루매출 100만원의 대박집 사장으로 올라섰던 김춘자사장은 자신의 최고의 황금기에 뜻밖에도 불귀의 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시신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그녀가 이미 사망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녀는 3층짜리 건물을 지을 야무진 계획을 갖고있었다고 한다. 김해의 다른 지역에 좀 더 넓고 큰 3층짜리 건물을 지어서, 그 건물 1층에다 넓고 쾌적한 국수집을 차려서 운영할 계획을 갖고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건축비용이 필요했던 김춘자사장은 자신이 투자했던 돈 5천만원을 되돌려받을 필요가 있었고, 강두식에게 찾아가서 아마도 자신의 투자금 변제를 종용했을 것이고. 그과정에서 강두식과 다툼이 벌어졌을 것이고. 결국 강두식으로부터 살해당했다고 추정해볼 수 있는 것이다.

 

 

 

 

김춘자사장의 살해범을 잡기위해서는 김춘자사장의 시신이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 6년간 미해결사건으로 남아있는 김춘자여사장 실종사건의 실마리를 풀기위해서는 하루빨리 김춘자사장의 시신을 찾아야만 한다.

 

김해 강도에는 강두식 소유의 논이 있다고 하는데. 최근에 그 논이 갑자기 매립되었다고 한다. 원래 논이었던 그 토지를 매립해서 과수도 심고 축사도 지어서 그곳에서 소를 키워왔다고 한다.

 

원래 논은 함부로 용도변경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강두식의 논을 매립한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라도 그 매립된 곳에 김춘자사장의 시신도 함께 매립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하고 있다.

 

김춘자사장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은 용의자가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음으로써 용의자를 단죄하지 못하는 매우 희한한 김해 여사장실종사건6년째 실마리를 찾지못하고,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김해국수집 여사장 김춘자 사진

 

경찰에서 원점에서 다시 수사를 시작해서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간다면, 과거에 빠뜨렸던 중요한 단서들을 찾아낼 수도 있다고 본다.

경찰에서 좀 더 과학적이고 치밀한 수사를 벌여서, 김춘자의 살해범을 반드시 잡아 처벌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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