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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1003, 이태원살인사건의 전말과 내용, 아더 패터슨 재판

 

 

 

그것이 알고싶다’ 1003회에서는 1997년도에 발생했던 이태원살인사건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큰 화제를 몰고오고 있다.

 

 

1997년도 이태원에서 23세의 젊은청년이 헴버거가게 화장실에서 칼에 난자당해 살해당하는 희대의 살인사건이 발생하였고, 이사건은 1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범을 밝혀지지 못한 미스테리한 살인사건으로 남아있다.

 

199723세의 젊은 청년 조중필은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헤어지던 중, 소변을 보기위해 이태원의 한 햄버거가게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 뒤를 따라온 누군가로부터 칼로 목부위를 여러차례 찔린 후에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다.

 

이태원의 한 헴버거가게에서 조중필 살해사건이 발생하자, 용산경찰서에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살해용의자로 아더 패터슨이라는 한국계 미국인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살해용의자는 패터슨 말고도 또 한명이 더 있었으며. 그당시 패터슨과 함께 살인현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 에드워드 리였다.

 

 

피해자 조중필이 헴버거가게 화장실로 들어와 소변을 보던 도중에 패터슨과 친구 애드워드 리가 함께 화장실로 뒤따라 왔으며, 그리고 볼일을 보던 조중필은 둘 중의 한사람으로부터 칼에 찔려서 살해당하고 만 것이다.

 

조중필은 화장실에 들른 직후 곧바로 살해당했으므로 화장실에 함께 있었던 패터슨과 에드워드 두사람 중 한사람이 살인범인 것은 분명했다.

 

이 두사람은 97년 당시 18살 동갑의 친구사이인데 살인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된 후, 서로가 서로를 살인자라고 지목하면서 자신은 목격자라는 엇갈린 진술을 하였다.

결국 검찰의 수사 끝에 에드워드 리가 살인죄로 기소되었고, 친구인 패터슨은 범행에 사용된 칼을 숨긴 증거인멸죄로 구속되었다.

 

조중필살인사건은 이렇게 살인용의자가 붙잡히면서 해결국면으로 돌아섰으나, 법원에서 기가 막힌 판결이 나옴으로써 사건이 대반전을 이루게 된다.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던 에드워드는 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 그리고 고등법원에서 2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서 자유의 몸이 된다. 대법원에서는 에드워드를 살인자로 보기에는 증거가 너무 미약하다는 것이 이유였고, 증거인멸죄로 구속된 에드워드의 친구 패터슨은 교도소에서 16월형을 복역하던 중 광복절특사로 풀려나게 된다.

 

에드워드 리가 무죄로 풀려나자, 피해자의 가족은 살해현장에 함께 있었던 패터슨을 살인범으로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검찰에서는 패터슨을 출국금지시켰다고 발표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패터슨은 미국으로 떠나가 버렸다.

 

이태원살인사건으로도 불리우는 조중필살인사건은 수사초기부터 범행현장에 함께 있었던 2명의 용의자가 체포되어서 쉽게 해결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사건이었다.

조중필이 살해당했던 그 동일시간대에 화장실에 함께 있었던 에드워드와 패터슨의 신병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두사람 중 누가 진범인가를 가리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검찰과 법원은 두명의 확실한 용의자를 체포했는데도 불구하고, 진짜 살인범을 가려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확실한 살인용의자는 16개월만 복역한 후 미국으로 도망가 버렸고, 이 사건은 지금까지 18년 동안 미해결된 사건으로 방치되어왔던 것이다.

 

  아더 존 패터슨 사진

 

다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이 이태원살인사건을 인지한 후 97, 98, 그리고 2009년도에 다큐방송을 편집해서 이태원살인사건을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한다.

 

가장 먼저 살인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에드워드를 그것이 알고싶다제작진이 만나서 의견을 들어보았는데. 에드워드는 자신이 화장실에서 패터슨이 조중필을 칼로 살해하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고 한다.

 

피해자 조중필이 화장실로 간 직후에, 에드워드에게 보여줄 게 있다면서 화장실로 데려간 패터슨은 에드워드가 손을 씻는 사이에 볼일을 보던 조중필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고 하며, 옆에 있었던 에드워드는 그모습을 분명히 목격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판에서 목격자인 자신이 왜 살해범으로 몰려서 재판을 받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다른 용의자 아더 페터슨 또한 제작진이 만나서 증언을 들어보았다. 그런데 패터슨의 입에서는 에드워드의 증언과 상반된 진술이 나왔던 것이다. 패터슨의 말에 의하면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뭔가 보여줄 게 있다고 화장실로 따라오라고 말했고, 패터슨은 에드워드가 마약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화장실로 따라들어갔다고 했다.

 

패터슨의 주장에 의하면 에드워드 리가 평소에 마약을 자주 복용해왔다고 한다. 마약을 즐기는 에드워드가 화장실에서 소지하던 마약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화장실로 따라간 페터슨은 에드워드가 안경쓴 젊은이를 칼로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2일만에 두사람 모두 용의자로 경찰에 체포되어 집중 조사를 받게되었다.

그런데 경찰조사과정에서 살해현장에 함께 있었던 두사람 에드워드와 패터슨은 서로가 서로를 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조사 과정에서 에드워드와 페터슨은 두사람 모두 살해현장에 함께 있었던 점은 순순히 인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누가 살해범인지를 놓고는 서로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두사람중 한사람은 분명 살인범이고 다른 한사람은 목격자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두사람의 진술이 일치했지만, 누가 살인범에 해당하고 누가 목격자에 해당한지를 놓고는 서로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살인범은 둘 중 한사람이 분명한데. 서로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으니, 여기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에드워드에 비해 패터슨은 살해당시의 상황을 꽤 구체적으로 증언했다고 한다. 패터슨은 에드워드가 조중필을 뒤에서 오른쪽 목부위를 세 번 칼로 찌르고, 조중필이 돌아서자, 이번에는 가슴부위를 두 번 찔렀고 다시 왼쪽목을 네 번 찔렀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했는데. 실제로 피해자 사신을 부검한 결과와 일치했다.

 

 

또한 패터슨은 조중필이 칼에 찔린 후에 피해자가 자신에게 쓰러지는 바람에 자신의 옷에 피가 많이 묻어버렸고, 에드워드가 바닥에 버리고 간 칼을 자신이 주워서 갖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화장실에 함께 있었던 에드워드 리는 살해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잘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그는 페터슨이 조중필의 목을 여러차례 칼로 찌르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살해했을 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패터슨과 살해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에드워드, 이들 두사람 중에 누가 진짜 살인범일까?

 

그런데 패터슨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직후 자신의 피묻은 옷을 불태워버렸고, 그가 소지하고 있던 칼을 미군영내의 하수도에 버렸다. 패터슨이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이다. 자신이 살해범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증거인멸을 시도할 필요가 있었을까?

 

범인은 분명 에드워드와 패터슨 두사람 중 하나이다. 두사람 모두 사건당시에 조중필과 함께 화장실에 있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에드워드와 패터슨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고 있고, 서로가 상대방을 살인범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사람의 증언이 정반대로 엇갈리고 있는데. 두사람의 증언에서 매우 미심쩍은 부분이 발견되고 있다

패터슨의 증언을 보면, 패터슨은 에드워드가 살인범이고 자신이 목격자라고 말했는데, 그럼 목격자인 자신이 굳이 칼을 소지할 필요가 있었을까? 에드워드가 살해후 버리고 간 칼을 자신이 주워서 소지했다고 말했는데, 이부분이 일반적인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태원살인사건 당시 범행에 사용된 칼

 

패터슨은 애드워드가 바닥에 버린 칼을 남들에게 들킬까봐, 자신이 대신 주웠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인범이 아니라면, 다른 살인범이 버린 칼을 굳이 자신이 주워서 증거를 인멸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잘못하면 자신이 살인범으로 몰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범행에 사용된 칼을 주워서 소지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자기모순인 것이다.

 

범행에 사용된 칼은 당연히 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에드워드가 소지하고 있거나, 에드워드가 증거인멸을 시도해야 이치에 맞는 것이다.

 

남의 살인행위를 덮어주려고 목격자인 자신이 대신 칼을 주워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패터슨의 말에 엄청난 모순이 발생하고 있으며, 거짓증언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살해혐의를 뒤짚어쓸 우려가 있는데도 그 증거물을 자신이 갖고있었으니 ~

 

그런데 범행에 사용되었던 칼은 원래 페터슨의 칼이었다고 한다.

햄버거가게에서 패터슨과 에드워드 등 네명의 친구들이 함께 햄버거를 먹던 도중에 패터슨이 자신의 칼을 자랑하며 식탁위에 내놓았고. 그 칼을 여러명의 친구들이 신기해하며 돌아가면서 만져보았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두사람의 진술이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누가 칼을 들고 화장실로 가서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두사람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사건 당일 범행현장인 화장실에 함께 있었던 두사람, 에드워드와 패터슨은 서로가 서로를 살인범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은 목격자이며 상대방이 살인범이라고 말이다.

 

참으로 희한한 살인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친한 친구사이였던 두사람이 서로 함께 범행현장에 있었는데. 서로가 서로를 범인으로 몰고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에드워드와 패터슨 둘 중의 한사람은 분명 살인범이 맞다는 것이다.

   

1997년 당시 살인사건을 인지했던 미군범죄 수사대에서도 패터슨이 범인이라고 단정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을 수사했던 용산경찰서에서도 패터슨이 살인범으로 결론이 났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판을 담당했던 1심 지방법원에서 살인범이 패터슨에서 에드워드로 뒤바뀌었고 에드워드가 1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에드워드의 말에 따르면, 그당시 용산경찰서에서 패터슨을 살인용의자로 확정하고 검찰에 올렸는데. 그 후에 유력한 용의자였던 패터슨은 살인범에서 빠져나가고 엉뚱하게도 목격자인 에드워드가 살인범으로 둔갑되어 재판을 받게되었다고 한다.

 

이태원사인사건이 발생한 뒤 2일 만에 미군범죄 수사대가 패터슨을 범인으로 붙잡았는데. 사건발생 직후 패터슨이 살인범이라는 전화제보가 걸려왔었다고 하며, 또한 페터슨 친구들의 제보로 페터슨이 피묻은 옷과 칼을 미군영내에 버렸다는 것을 미군범죄 수사대에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미군범죄 수사대가 페터슨을 살인범으로 단정한 후 페터슨을 용산경찰서로 넘겼으며 용산경찰서에서도 수사결과, 패터슨의 살인혐의를 인정하고 검찰에 패터슨을 살해용의자로 올린 것이다.

 

  에드워드 리 사진

 

그런데 패터슨을 살해용의자로 검찰에 넘긴 이후부터 이사건은 매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다.

패터슨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이상하게도 패터슨을 살인용의자가 아닌, 칼등 범죄도구의 증거인멸혐의로만 기소했고, 반면 목격자로 자진 출두했던 에드워드를 살해용의자로 지목하고 기소했던 것이다.

 

수사 초기만해도 패터슨이 살인용의자가 확실시 됐는데. 검찰로 넘겨진 이후부터 엉뚱하게도 에드워드가 살인피의자로 둔갑되어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검찰이 페터슨의 살인혐의를 풀어주고, 에드워드에게 살인혐의를 뒤집어씌운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정말 검찰에 의해서 기가 막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며, 이런 검찰의 모호한 행동 때문에 패터슨은 살인혐의에서 벗어나서 16개월의 가벼운 형만 살고 미국으로 달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검찰은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강력한 살인용의자였던 패터슨을 무혐의로 만들어준 것일까? 이 당시의 검찰의 이러한 행동은 수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당시 검찰의 이런 말도 안되는 행동 때문에 다 잡았던 이태원살인사건의 확실한 살인범을 18년 동안이나 방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수사초기에 살인범으로 거의 확실시되던 패터슨을 검찰이 용의선상에서 빼버린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당시 검찰에서 실시한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 패터슨의 진술은 진실반응이 나왔고, 에드워드의 진술은 거짓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 검찰은 조중필시신을 검사했던 부검의 소견을 참조했다고 하는데. 부검의는 피해자의 상처를 보았을 때 자신보다 키가 더 크고 덩치가 더 큰 상대방에게 짧은 시간내에 제압당했다는 소견을 내놨는데, 이에 합당한 사람은 키가 작은 패터슨보다는 키도 크고 덩치가 좋은 에드워드라는 것이다.

페터슨의 키는 170cm이고 에드워드는 180cm의 키에 105kg이므로 부검의의 소견대로라면 에드워드가 더 잘 맞는다고 검찰에서는 판단한 듯하다.

 

 

에드워드측의 말에 따르면 그당시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엉터리라고 한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을 때에 영어를 잘하는 패터슨에게는 영어통역관을 붙여주고, 영어를 잘못하는 에드워드에게는 영어통역관을 안 붙여주었다고 하며, 에드워드는 포승줄에 묶여있는 상태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 에드워드측의 주장에 의하면 검찰은 누군가를 살인범으로 미리 결정해놓고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라고 한다.

 

이당시 검찰이 패터슨에게만 통역관을 붙여주고 에드워드에게 통역관을 안붙여준 상태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잘못된 것이다.

 

, 한국말을 잘하는 패터슨이 통역관에게 질문을 하는 동안 충분히 대답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고 하며, 패터슨은 이러한 시간적 여유를 활용해서 충분히 답변내용을 머릿속에 정리해서 대답한 것이므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진실반응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통역관의 도움을 못받았던 에드워드는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98년도 당시의 거짓말탐지기는 지금과는 달리 탐지방법이 허술해서 오차가 많이 발생하며 신뢰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한다.

 

또한 범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당시, 소변을 보고있던 피해자의 등뒤에서 칼로 기습적으로 9군데나 찔러서 살해했는데. 법의학적 소견데로 범인이 반드시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야 한다는 것도 상황과는 맞지않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전혀 눈치를 채지못하는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칼로 9번이나 찔러서 살해하는 것은, 상대방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사람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한두번 만 찔러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날카로운 칼로 무려 9번이나 찔렀다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의 역공을 두려워한 키가 작고 왜소한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범죄심리전문가들의 소견이다.

 

그러니까 98년 당시의 검찰의 수사나 법의학적 조사가 얼마나 허술하고 비과학적인 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으며, 이렇게 허술하고 비합리적인 수사행태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리고 진범은 풀려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검찰이 정말 한심하고 무능력하다는 것을 또한번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이런 한심한 검찰들이 범죄수사를 하고 있다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범죄인으로 몰려서 억울한 옥살이들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다.

 

이태원살인사건의 단독범인으로 기소된 에드워드는 1심재판에서 무기징역, 2심재판에서 20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여기서 검찰의 치명적인 실수가 또하나 있는데, 이글에서 꼭 밝혀볼 필요가 있다. 검찰과 법원이 두사람 중 에드워드를 살인범으로 보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구체적인 살해동작을 에드워드가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패터슨은 구체적인 살해동작을 너무나도 잘 기억해내었고, 이것이 검찰수사와 법원 심리과정에서 패터슨을 무죄로 만들고 에드워드를 유죄로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작용을 했다는 사실이다.

 

 

, 검찰과 법원은 범행동작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목격자로 본 것이고 범행동작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살인범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것은 검찰과 법원의 치명적인 실수이고 잘못된 판단인 것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판단해볼 때에도 당연히 살인범이 자신의 구체적인 범행동작을 더 잘 기억해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의도적으로 행한 행동이었으니까 ~

그리고 옆에서 목격했던 목격자는 살해동작의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를 기억해내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자신이 의도했던 행동이 아니라, 타인의 행동이기 때문이고, 또한 목격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인장면을 목격하게 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그 충격으로 인해서 구체적인 살해동작을 더더욱 기억해내기가 힘든 것이다. 이것은 정말 상식중의 상식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당시 검찰과 법원판사들은 이러한 상식을 반대로 해석해서 범행동작을 잘 기억하는 패터슨을 무죄로 판단했고, 범행동작을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에드워드를 살인범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검찰과 법원에서 완전 거꾸로 판단했던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히고 어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적 전문지식이나 범죄수사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인들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상식적인 판단을 전문가들인 검사와 판사들이 전혀 판단해내지 못하고 엉뚱한 판단을 한 것이다.

 

범죄심리전문가들의 판단도 필자의 판단과 똑같이 일치하고 있다. 범죄심리전문가들은 진짜살인범이 구체적인 범행동작을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고 하는 검찰의 논리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태까지 한번도 이러한 연구결과는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는 많지만 ~

 

 

이와같이 그당시 검찰과 1, 2심 재판부는 상식에 어긋나는 잘못된 판단으로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았고 에드워드는 2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최종심인 대법원에 가서야 중거불충분으로 다행스럽게도 에드워드는 무죄선고가 내려졌다고 한다.

만일 대법원까지 가지 않았다면, 에드워드는 징역 20년을 교도소에서 복역할 뻔 했던 것이다.

 

물론 이태원살인사건은 아직 누가 범인인지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섣불리 누가 살인범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건당시의 정황이나, 목격자, 그리고 증거물등을 종합해보면 누가 진짜 살인범인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가 있다.

 

진짜 참으로 이상한 살인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범인이 이미 2명으로 좁혀졌고, 목격자도 있다. 이 두명의 신병도 이미 확보된 상태에 있다. 범인이 멀리 도망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확보된 두사람의 용의자 중 한명인 진범을 검찰과 법원에서는 18년 동안이나 밝혀내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에서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쉬운 사건이라서 진범을 밝혀내지 못한 것일까? 너무도 쉬운 사건이다 보니까, 너무 안이하게 수사한 것일까?

차라리 일반인들에게 수사와 재판을 맡겼더라면 이미 18년 전에 진범을 밝혀냈을 것이다. 이토록 우리나라 검사와 판사들이 무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범죄심리전문가들은 애초에 검찰에서 범행현장에 있었던 두사람을 모두 기소했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당시 검찰에서는 두사람 중 한사람인 에드워드만을 단독범행으로 기소했던 것이다.

 

검찰이 첫단추를 잘못 끼워도 단단히 잘못 끼운 것이다. 처음부터 범행현장에 있었던 두사람 다 혐의가 인정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에드워드만 단독범인으로 기소하고 패터슨은 혐의조차 두지않았던 건 검찰의 엄청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그당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검찰에게 무슨 외압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 상식밖의 행동을 검찰이 한 것이다.

   

97년 재판당시 살인혐의에서는 무죄선고를 받고, 증거인멸죄로만 16개월형을 받았던 패터슨이 923일 다시 재판을 받기위해 우리나라로 송환되었다. 

97년 조중필살인사건의 피의자로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된 패터슨은 이제 검찰조사와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할 상황으로 되돌아왔다.

 

제발 이제는 검찰과 법원이 18년 전에 행했던 어리석고 황당한 판단을 하지않았으면 한다.

졸지에 귀한 아들을 잃어버리고 18년 동안 살인범을 잡지못해 애태웠던 피해자의 부모님의 심정은 얼마나 쓰라리고 아팠겠는가?

조중필의 부모님은 졸지에 귀한 자식을 잃고 다잡았던 범인까지 놓쳐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한이 맺혀서 여러번이나 자살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조중필의 살해범은 오래전부터 두명으로 압축된 상태고, 그 중 한명은 이미 무죄판결을 받은 상태다. 그러면 누가 확실한 진범이겠는가?

검찰의 안이한 판단과 실수 때문에 또다시 눈앞에 있는 진범을 풀어주는 실수를 두 번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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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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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 대신 한씨조선, 단군조선의 실체와 근거, 삼국사기 내용

 

 

 

 

103일은 개천철(開天節)’로서 우리나라의 시조 단군이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개국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개국기념일이다. 역사가들이 전하기를 우리나라의 국조인 단군왕검이 원년 103일날에 최초로 단군조선(고조선)을 개국했다고 알려지면서, 국가적으로 단군의 국가제정일인 103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날을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의미로 개천절을 정해서 기념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시조라고 불리우는 단군은 진짜 실재한 역사적 인물일까, 아니면 단지 신화속의 인물일까?

그리고 단군이 개국했다는 단군조선은 실재한 역사일까, 아니면 신화로만 존재하는 허구의 역사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과 단군이 개국했다는 단군조선은 별개의 개념이다. 사학자들이 우리나라 고조선을 3분등분해서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으로 구분해놓고 있는데, 3단계의 고조선 중에서 역사적 실체가 인정되고 있는 고조선은 마지막단계인 위만조선뿐이다.

 

고조선의 첫단계인 단군조선은 단군신화로 알려지면서 강단사학계에서는 단군조선의 그 역사적 실체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며, 고조선의 두 번째단계인 기자조선(箕子朝鮮)은 복생의 상서대전사마천의 사기반고의 한서등 중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등 사료적 근거는 갖추고 있지만, 기자가 중국 은나라 사람인 관계로 우리나라 민족사학자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인정받지 못하고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민족사학계에서는 중국 은나라 신하인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을 부정하고 있고, 기자 대신 한씨가 세운 한씨조선으로 대체해서 불리우고 있다.

 

단군조선 개국시기 - 기원전 2,333~

기자조선 개국시기 - 기원전 1,100~

위만조선 개국시기 - 기원전 194~ 기원전 108

   

그러므로 종래에 인정받아왔던 3단계의 고조선사 중에서 기자조선이 아닌 한씨조선과 위만조선만이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기자조선을 개국한 기자(箕子)는 중국의 정사인 사마대전’ ‘사기’ ‘한서’ ‘삼국지등에 기록된 역사적 인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은나라가 멸망한 후, 기자가 주나라의 동쪽땅 조선으로 망명한 뒤, 주나라 무왕으로부터 조선왕에 봉해짐으로써 조선왕으로 등극했다는 내용을 다룬 이들 중국사서들의 기자조선 내용만큼은 우리나라 민족사학자들이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러한 기자조선설은 중화사상에 입각해서 중국인들이 조작해낸 허구의 역사라고 주장이 현재의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최근 학교교과서에도 기자조선을 빼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고려와 조선시대에서는 기자조선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해왔으며, 기자를 조선의 국조로서 지배계층들과 많은 유학자들과 기자사당과 묘를 지어놓고 제사까지 지내왔다는 사실을 알고있는가?

 

현대의 민족사학자들이 기자조선을 한씨조선(韓氏朝鮮)이라고 바꿔부르는 것은 중국 잠부론(潛夫論)의 역사적 기록에 근거를 두고있기 때문이다.

후한시대에 왕부가 쓴 잠부론의 기록에 의하면, ‘주나라 선왕 때에 연나라 근처에 한후(韓侯)라는 세력(국가)이 있었으며, 한나라의 서쪽에서도 성씨를 한()이라고 하는등 세력을 떨쳤는데,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다.

 

위만에게 패망해 달아난 왕은 바로 준왕(準王)이므로, 이 기록에서 언급한 한씨는 준왕과 동일한 혈통의 세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준왕의 성씨가 한씨(韓氏)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위만에게 패망하여 왕위를 빼앗기고 달아난 준왕의 성씨는 기씨가 아니라 한씨(韓氏)라고 하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오랫동안 민족의 국조라고 숭배되어왔던 기자조선과 기후는 역사적 실체로써 부정되고, 기자조선 대신 한씨조선이 더 큰 설득력을 갖고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기자조선대신 한씨조선으로 바꿔 불러야할 것이다. 또 이당시 한씨성을 가진 준왕이 위만에게 패하여 바다를 건너 한반도 남쪽 땅에 도착해서 자신을 따라온 신하, 호위군사등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했는데. 그 국가를 한(=마한)이라고 했으며. 자신을 스스로 한왕(韓王)이라고 칭했다는 기록도 있다.

 

, 위만에게 패망해 한반도 남쪽지역(전라도 익산부근)에 도착한 준왕(韓準, 韓王)은 자신의 성씨를 따서 자신을 한왕(韓王)이라고 칭했으며, 한왕(준왕)이 이곳에서 세운 국가는 자연스럽게 한()이라고 불렀으며, 한은 바로 마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왕(준왕)이 세운 한()으로부터 한반도 남부에 마한, 진한, 변한 등의 삼한(三韓)이 갈라져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론을 내면 준왕의 성은 한씨(韓氏)라는 것과 준왕(한왕)이 한반도 남부로 내려와서 한이라는 국가를 세웠고, 준왕이 세운 한()은 나중에 삼한으로 나눠지게 된다.

그러므로 기원전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삼한(三韓)은 준왕(한왕)이 그 시조가 되는 것이며, 3개의 한이 모두 나라이름을 한()이라고 한 것은 바로 준왕(한왕)의 성씨 한()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기원전에 존재했던 한반도 남부지방의 삼한의 시조는 바로 위만에게 패망했던 준왕(한왕)이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준왕의 성은 한()이라는 것도 또한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나라 이름을 한국(韓國)이라고 부르는 원천이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명이 왜 한국인지, 그리고 한국의 기원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이지를 미리 짚어본 것이다.

기자는 실존인물인 것은 맞지만, 기자가 세웠다는 기자조선은 고조선의 지역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서쪽변방에 있었던 고조선의 속국 내지는 종속국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당시 한반도북부와 만주를 점령하고 있었던 거대한 제국 고조선은 한()이라는 성씨를 지닌 왕들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기자조선은 고조선의 서쪽변방에 위치한 고조선의 작은 변방종속국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중국 주나라의 동쪽이라면 그지역은 바로 오늘날의 화북지역이므로, 주나라의 도읍 서안(장안)에서 동쪽지역인 화북성부근으로 도망친 기자가 세운 나라 또한 중국 화북성일대에 있다고 보는 것이 일리에 맞다.

 

이렇게 해서 고조선의 3단계 국가중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역사적 실체는 한씨조선 - 위만조선으로 바뀌어서 그 역사적 실체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첫단계의 국가인 단군조선의 실체는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이며, 단군조선의 실체는 역사적 사료와 그 어떤 고학적 유물에서도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시조로서 오랫동안 추앙받아왔던 단군과 단군조선은 과연 실재로 존재한 역사일까? 정말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일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단군조선이 실존했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역사적 사료(기록)을 보더라도 정사에는 단군이나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단지 단군조선은 야사에서만 간간히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단군과 환웅의 역사가 기록됐다고 주장하는 환단고기는 개연수라는 국수주의(미치광이 민족종교분자)가 쓴 개인문집일 뿐이며, 역사적 사실하고 아무 관련이 없으니, 절대로 환단고기를 읽지않는 것이 좋다. 환단고기는 단학과 대종교라는 종교에 빠진 광신자 개연수가 자신의 상상대로 쓴 100% 위서이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그리고 단군이나 단군조선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물(유물, 유적)등도 전혀 나오지않고 있다. 북한의 평양에 있다는 단군사당은 김정일이 북한이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정통성을 확보한 단군의 후손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조작된 분묘일 뿐이다.

 

현재 존재하는 우리나라 최고로 오래된 역사서는 삼국사기(삼국사기)’. 현재 우리나라 교과서에서 나오는 한국사의 내용은 모두 정사인 삼국사기에서 인용한 글들이다. , 삼국사기가 없었더라면,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책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삼국사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가치높은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대국가와 가장 오래된 역사적 사실들을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사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삼국유사도 있지만, 삼국유사는 정사가 아니라 개인이 쓴 야사이기 때문에 삼국사기보다는 사료적 가치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역사책은 바로 이 삼국사기의 내용을 근거로 해서 쓰여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와 상고사 역사는 삼국사기를 토대로 해서 쓰여진다.

 

삼국사기 집필을 주도했던 김부식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서인 삼국사기에 단군이나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국가에서 최고관리인 시중을 중심으로해서 사관 10명이 위원회를 편성해서 오랫동안 연구해서 집필되었던 삼국사기에 가장 중요한 우리나라의 시조와 최초의 국가를 다루지않았다는 것이 정말 이상할 뿐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가 매우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시대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와 고대국가시대 및 그 이전의 시기를 기록한 책으로서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책인데. 유감스럽게도 삼국사기의 내용에는 삼국과 부여의 내용은 나오지만, 고조선과 단군에 대해서는 그 어떤 기록도 나오지않고 있다.

 

삼국사기에 고조선에 대한 내용은 딱 한 줄만 나오는데, 박혁거세를 왕으로 옹립했던 경상도 계림지역의 5촌이 고조선의 유민(遺民)이라는 기록이 유일하다. 이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서도 고조선의 실체는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지만 단군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는데. 왜일까?

 

그런데 삼국사기보다도 140여년 후에 쓰여진 삼국유사에는 단군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즉, ‘단군신화에 대한 기록이 그것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내용은 한페이지 분량으로 극히 짧은 내용으로 되어있으며, ‘단군신화의 내용은 역사적인 내용이라기 보다는 민담이나 설화같은 황당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기원후 1281년 고려 충렬왕때의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내용은 역사적 사실로 보기 힘든 매우 픽션 같은 황당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이 단군신화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가 곤란한 측면이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의 내용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 위서(북위의 위수가 쓴 책)에 이런 말이 있는데. 옛날 환인이 있었는데. 인간세계를 동경하였던 환인의 서자 환웅이 풍백, 운사, 우사와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묘향산추정)의 신시(神市)로 내려와서 인간세계를 다스렸다.

 

환웅은 인간이 되기를 원했던 곰과 호랑이에게 마늘과 쑥을 먹고 100일을 버텨내면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21일을 버터내어 여자가 되었으며 그녀가 웅녀이다.

 

환웅은 잠시 인간으로 탈바꿈해서 혼인을 꿈꾸는 웅녀와 혼인함으로써 단군왕검이 태어났으며, 단군왕검은 중국 요임금시대인 BC 2,333년에 평양성에 도읍해서 조선을 개국했으며, 다시 도읍을 백악산의 아사달로 옮겼으며, 이곳에서 1,500년동안 조선을 다스렸다.

 

그런데 중국 주나라시대에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봉하니, 단군은 장경당으로 옮겼다가, 나중에 다시 아사달로 돌아와서 1,908세까지 살다가 산신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에 대한 내용인데,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인간세계를 다스린다는 내용과 환웅이 곰이 변한 웅녀와 혼인해서 단군을 낳았으며, 단군이 조선을 개국하고 1,500년 동안 다스렸다는 내용으로 함축해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관련 내용이 너무나 황당하지 않는가? 곰이 인간을 낳았느니, 단군이 왕이 된 후 1500년간 다스렸다느니, 기자에게 쫒겨났다가 다시 돌아와 1900년까지 살았다느니, 이러한 황당한 내용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삼국유사에 언급된 단군신화의 근거인 위서라는 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삼국유사가 단군관련 내용의 근거로 든 위서라는 책 자체가 중국에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비슷한 이름의 책으로는 삼국지의 위지동이전과 위략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들 책에도 단군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승려 일연이 단군관련 내용을 쓸 때에 보고쓴 책은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삼국유사의 단군관련 내용은 아마 평양지방에서 민담으로 떠돌던 전설같은 이야기를 승려 일연이 전해듣고 삼국유사 안에 끼워넣은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승려 일연은 두명의 제자를 데리고 고려시대에 전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민담과 괴담, 불교에 관련된 설화등을 채집해왔고, 이렇게 민간에서 채집한 민담, 설화 등을 엮어서 만든 책이 바로 삼국유사다.

 

삼국유사

 

삼국유사는 엄밀히 말해서 역사서가 아니고 불교인의 입장에서 쓴 불교적 체험이나 불교적 민담설화이다. 불교나 스님들의 체험담과 민담내용이 거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역사 관련내용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야사인 삼국유사에 매우 황당한 내용으로 기록된 단군신화는 가장 오래된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때 문하시중인 김부식이 10여명의 사관과 함께 집필했던 객관성이 높고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간 우리나라 고대국가시대를 기록한 가장 수준 높은 역사서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치높은 사서인 삼국사기에서 삼국유사에선 다루었던 단군관련 내용을 넣지않은 것은 단군신화의 내용이 너무 황당하기 짝이 없으며, 객관성이 떨어지고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사기를 집필했던 김부식이나 10명의 사관들은 모두 당대 최고의 학식높은 유학자들이었으며, 최고의 인텔리층이었기 때문에 단군에 관한 민간에 떠돌던 이야기를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조선의 유물인 청동장식 2륜마차

 

그런데 단군신화의 내용이 객관적인 과거의 근거나 기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황당한 내용의 단군관련 내용을 정사인 삼국사기에 의도적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 김부식은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삼국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단군신화는 중국이나 고대 우리나라에서 사서에 기록되어 전해진 내용이 아니라, 평양이나 한반도 북부지방에 민간에서 민담설화로 떠돌던 이야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 한반도 북부지방의 촌로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내려왔던 구전설화로서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로 이해하면 된다.

 

이렇게 민간에서 재미있는 민담이나 설화로 떠돌아다니던 근거가 희박한 단군 관련 내용을 고려시대 최고의 석학이었던 김부식이나 사관들이 역사적 사실로 인정할 수는 결코 없는 일이었고, 또한 김부식과 10명의 사관들은 삼국사기를 집필할 때 가장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록하기 위해서 중국과 전국의 관청등을 오가면서 수많은 과거의 사서들을 수집하고 연구를 많이 했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의 서문에도 분명히 나와있다. 삼국사기의 내용은 황당한 설화들은 제외하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고대사서들에 기록되어 있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역사적 사실만을 엄선해서 기록한다고 말이다.

 

삼국사기에 유일하게 단군관련 기록이 딱 한줄 나온다.

촌로들이 이르기를, 평양은 옛날에 선인왕검이라는 자의 도읍지였었다고 한다

이 기록이 단군에 관한 삼국사기의 유일한 기록이다.

 

단군이 이기록을 봤다면 얼마나 슬프고 원통했겠는가? 한나라의 국조인 자신을 이렇게 홀대히 취급했으니 말이다.

딱 한줄, 그것도 단군이라는 표현대신 선인왕검이라고 표현하고, 조선이라는 나라이름도 전혀 없고 단지 평양이 선인(단군)의 도읍지라는 표현이 전부이다.

 

그리고 이같은 단군관련 내용을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사서가 아닌 시골의 노인내들한테서 구전으로 전해들었다고 한다.

이것으로보면 삼국사기를 집필했던 김부식과 사관들은 분명히 단군신화의 내용을 알고있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너무 유치하고 황당해서 삼국사기에 기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후 단군관련 내용은 제왕운기,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지리지, 동국통감, 응제시주 같은 책에 실리게 되는데, 이러한 기록들은 전부 고려시대의 삼국유사를 보고 그대로 베껴쓴 것이기 때문에 논할 가치가 전혀 없다.

 

 

 

단군신화는 과거에 오랫동안 한반도 북부지방과 만주의 일부지역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설화이야기이다.

이러한 단군신화가 실재한 역사라기보다는 상고시대에 국가라는 연합체를 세우기 위해서 특정한 정치지도자가 정치적 술사로 사용했던 상징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치적 이합집산이 심했던 상고시대의 부족국가시대에 여러 이질적인 부족들을 통합하고 한 대 뭉치게 하기위해서 단군이라는 천손집단이라는 상징물을 만들어서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하고, 손쉽게 부족들을 복속시켰던 것으로 판단해볼 수 있다.

단군이라는 명칭에는 천손 또는 천계집단이라는 철학이 담겨져 있다. ‘단군이라는 명칭에는 하늘의 황제의 혈통을 이어받은 정통성있는 왕권이라는 뉘앙스가 진하게 담겨져있다.

 

정치적 통합체인 국가가 처음으로 성립하던 시기인 상고시대와 고대국가시대에 서로 세력을 다투며 분열되었던 이질적인 여러 부족들을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구심점이 필요했으며, ‘단군이라는 상징물이 여러부족들을 결합시키고 한 대 뭉치게 만드는 정치적 구심체역할 내지는 민족적 통합물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주지역의 여러 이질적인 부족들을 통합시키고 거대한 민족국가를 세우길 원했던 특정한 정치세력의 수장이 단군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서 자신이 하늘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권의 보유자로서 행세하였고, 이러한 정치적 상징물이 성격이 서로 다른 여러부족들을 통합시키고 하나로 뭉치게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고조선과 같은 특정한 민족국가가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닐까?

 

, 환인, 환웅, 단군이라는 키워드는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수십개의 부족집단들이 서로 세력을 다튔던 시기에 이들 부족들을 하나로 통합시켜 연합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되었던 정치적인 상징물이자 민족 통합의 키워드였다고 볼 수 있다.

 

천신, 천제의 혈통을 이어받은 단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부족의 군장이 여러 부족들을 하늘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권이라는 귄위를 사용해서 손쉽게 통합시키고 복속시켜나갔던 것이다. 하늘의 혈통이라는 것은 왕권의 정통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상징물이나 수단을 사용해서 실제로 여러 부족들을 통합해서 부족연맹체인 국가를 성립시켰던 고대국가들이 꽤 많이 있다.

부여, 고구려 또한 천손사상을 퍼뜨려서 다른 이질적인 부족들을 쉽게 통합시켰던 것이며, 그 시발점이 바로 단군인 것이다.

 

따라서 단군은 실존인물이라기 보다는 만주지역의 한쪽 귀퉁이를 다스리면서 주변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해나갔던 부족연맹체의 수장이나 군장명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상고시대에 좀 더 강한 부족장이 천손사상을 상징하는 단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서 하늘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권으로서 행세하면 손쉽게 주변의 부족들을 복속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단군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군장이나 부족장을 의미하는 명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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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발표, ‘화성에 소금물개천 흐른다화성의 미스테리, 외계인 생명체 존재가능성

   

 

 

929030분 나사(미항공우주국)가 화성에 관하여 중대발표를 하였는데. 화성에 액체상태의 물이 흐르고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나사는 28일 과학저널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게제한 중대발표에 따르면 화성표면에 물이 흐르고있는 것을 확인했으며, 화성에 흐르고 있는 물은 소금물 개천과 같은 형태다고 밝혔다.

 

 

나사의 설명에 따르면 염수(소금물)이 화성의 특정지역의 비탈진 부근에서 여름철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며 이렇게 여름철에 흐르는 개천물은 나먼지 1년동안에는 다시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나사는 그동안 화성탐사를 계속 진행해왔는데. 최근에 화성에 물개천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하며, 그 증거로 동영상과 사진을 제시했다.

 

 

나사가 화성에 물이 흐르고 있는 사실을 공식 인정하면서 화성에 생명체가 살고있을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과거에 화성에 물이 흐른 적이 있었다는 그 흔적을 발견한 적은 있지만, 이번 나사의 발표는 현재 액체상태의 물이 흐르고 있는 사실을 발표한 것이라서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몰고오고 있다.

 

과거에도 화성에 물과 관련된 나사의 발표가 있었지만, 화성에 물이 흐르고있다는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2000년도에 화성에 물이 흐른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재가 아닌 과거에 물이 흘렀었다는 과거의 물 존재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며. 2008년도에는 화성에 물이 얼음상태로만 존재한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나사의 발표는 과거의 발표보다 훨씬 더 진일보한 내용으로 현재시점에서 화성에 개천형태의 물이 흐르고 있다는 내용이어서 전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있는 것이다.

 

화성의 북극지방과 남극지방에는 엄청난 양의 얼음이 땅속에 묻혀있으며. 몇 년전에는 화성 탐사로봇이 화성표면을 파다가 땅속에 소량의 눈형태의 물을 발견한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이당시 발견된 물은 매우 소량이어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 탐사로봇의 눈() 발견으로 화성에 분명 다량의 물이 어디인가에는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속해서 물확인 탐사를 지속해왔다.

 

이번 나사의 중대발표는 소량의 눈형태의 물과는 차원이 다른 현재 계속해서 흐르고있는 물개천의 발견이기 때문에, 화성탐사 중 가장 진일보한 발견이 아닐 수 없으며, 물과 관련된 생명체의 존재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지게 됐다.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물이다. 그동안 말로서만 무성하게 나돌았던 화성에 물의 존재가 이번 나사의 발표로 명백히 공인되었으니, 화성에 생명체가 그 어디엔가 은둔한 상태로 소규모로 살아가고 있을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40억년 전에 화성에 지구와 비슷한 형태의 큰 바다가 존재했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는데, 화성에 존재했던 바다는 기상이변 등 원인불명의 이유로 화성표면에서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우리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비슷한 조건과 형태를 가진 행성은 바로 화성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태양계내에서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인 화성을 크게 주목해왔다. 우리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행성은 금성이지만, 금성은 기압이 지구의 90배이고 평균기온이 섭씨 300도를 넘어서 너무 뜨거워서 생명체가 사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그렇지만 화성은 최저기온이 영하 143, 최고 기온이 영상 35도로 다른 행성에 비해서 지구의 기온과 매우 가까운 기온을 보유하고 있다.

화성이 지구보다 다소 추은 것은 사실이지만, 화성의 적도지방은 지구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포근한 기후를 갖고있어서 생명체가 살기에 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화성의 공기인데. 화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가 댜량으로 존재하고 있다. 화성에도 산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2% 정도의 소량의 산소가 존재하고 있다.

 

만일 화성에 생명체가 살고있다면, 적은 산소량에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특수한 생명체가 될 것이다. 아니면 이산화탄소나 탄소에서 산소를 추출해낼 수 있는 최첨단과학기술을 보유한 고등 지적인 외계생명체일 수도 있다.

 

자신이 과거 화성에서 살았던 화성인으로서 지구에 환생하게 됐다고 주장한 인디고소년 보리스카의 말에 따르면, 현재 화성에는 지적생명체인 외계인들이 살고있으며. 그들은 현재 모두 화성의 땅속에 지하도시를 건설해서 땅속에 살고있다고 한다.

 

보리스카의 주장에 따르면 화성에서는 과거 태양계 지적생명체들 간에 핵전쟁이 벌어져서 화성의 문명들이 모두 파괴되어 버렸고, 화성표면의 물과 공기가 그 충격으로 날아가 버려서 오늘날과 같은 황량한 불모지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핵전쟁으로 인한 대재난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일부의 화성인들은 화성의 땅속에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들었고, 그들 모두 지하로 숨어들어가서 화성의 지하도시에 거주하며 현재까지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핵전쟁으로 대기중 산소가 사라지자, 화성인들은 첨단기술을 활용해서 탄소로부터 산소를 추출해서 땅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인디고소년의 일종인 러시아의 보리스카는 화성인들은 지구의 인류보다 훨씬 문명이 발달한 초고대문명인들이라고 하며 지구인들이 화성인들의 과거 잘못된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인디고소년 보리스카의 주장에 따르면, 화성은 과거 핵전쟁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지구처럼 대기중에 산소가 많았고 바다와 푸른 산이 많이 있는 생명체가 살기 아주 좋았던 환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화성인들의 탐욕 때문에 화성에서 대참사가 발생하였고, 오늘날과 같은 황량한 불모지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디고소년 보리스카가 일방적으로 주장한 내용이며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미국 나사가 화성에 10번 넘게 많은 탐사선들을 보내서 촬영했던 수많은 사진들을 관찰해보면, 인디고소년 보리스카가 말한 주장에 신빙성을 높여주는 단서들이 하나둘씩 발견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화성에 보낸 탐사선 마르스호’ ‘바이킹호등이 화성표면을 촬영한 수많은 사진들에서 인면암과 수많은 피라미드들’, 그리고 사람형태의 석고상같은 인공건조물들이 계속해서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은 인디고소년 보리스카가 증언한 내용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증거물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한다.

 

특히 2007년 화성탐사선 스피릿이 촬영했던 사진인 사람형태의 조각상이 공개되었는데. 이것은 사람형태의 조각상으로 누군가가 정교하게 조각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당시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성에 지적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뭏튼 이번 나사의 중대발표에서 분명히 현재 화성에서 물이 흐르고있는 개천이 확인되었으니, 화성에 어떠한 형태로든 생명체가 살고있을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또한 장차 미래에 인류가 화성에 정착해서 살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열리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화성에는 분명 물이 흐르고 있으며 대기중에는 극소량의 산소만이 있다는 것인데, 어쩌면 나사가 자신들의 특수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위의 사진은 화성탐사선 스피리트호가 2007년 11월에 화성의 구세브 분화구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나사가 2008년 1월 2일에 공개한 사진인데, 인간 모양의 조각상이 보인다. 사진을 크게 확대해보면 누가 뭐래도 지적생명체가 정교하게 조각한 사람형태의 조각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정교하게 조각된 물체를 풍화작용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가?

 

화성이 지구처럼 물도 많고 산소도 많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에는, 러시아, 중국, 유럽등 강대국들이 너도나도 할 것없이 화성으로 진출해서 화성의 널려있는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과 에너지를 개발, 확보해갈 것이며. 이렇게 되면 미국의 화성에 대한 독점적인 이익이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화성이 마치 산소도 없고 물도 없는 쓸모없는 불모지인 것처럼 발표해서 다른 강대국들이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은 비밀리에 화성에 탐사선과 탐사인력을 보내서 화성을 탐사하고 에너지를 개발하는 작업을 해왔다고도 볼 수도 있다.

 

남들한테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행성이라고 말하고 자신들은 몰래 그곳의 무한한 가치를 개발하려는 속셈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의 민간연구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정부가 비밀리에 화성에서 사람들을 보내서 특수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이 밝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미국나사는 화성을 별 쓸모없는 행성이라는 역정보를 계속 흘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화성에 물이 흐른다는 진실을 밝힌 것일까? 거짓말하려면 끝까지 하지않고?

그 이유는 이렇다. 여태까지 미국 나사가 화성에 관한 중대한 사실들을 숨겨왔지만, 영원히 인류를 속일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미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다른 선진국들도 탐사선을 화성에 보낼 계획을 세워놓고 있으며. 곧 이들 국가들도 화성을 본격적으로 탐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미국이 화성에 관해서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이 모두 탄로나게 되고, 미국은 인류를 속인 매우 부도덕한 나라로 낙인찍히며.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지위와 권위는 여지없이 무너져버릴 것이다.

 

다른 강대국들이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서 어차피 밝혀질 사실을 미국이 미리 조금씩 진실을 발표해서 나중에 받게될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미리 피하기 위한 술수가 아닌가 판단된다.

 

그동안 미국정부는 화성 뿐만 아니라, 달과 지구에 드나드는 외계인들, UFO등에 관해서 무수한 거짓말을 해왔으며, 진실을 외면해왔다.

화성 뿐만 아니라, 다른 행성들, 그리고 지구를 수없이 드나들고 있는 수많은 UFO와 외계인들에 대한 숨겨져 왔던 정보들도 앞으로 모두 밝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사 중대발표 화성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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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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