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ookie_domain: 'auto', cookie_flags: 'max-age=0;domain=.tistory.com', cookie_expires: 7 * 24 * 60 * 60 // 7 days, in seconds }); 티라노의 보물 :: '사랑방 이야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29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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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682, 엘비스 프레슬리, 어머니를 위한 선물, 히트곡 ‘Hound Dog’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이야기가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 많이 나오고 있네요. 몇주전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와 리사 요한센 이야기가 전파를 탔는데, 이번주에는 또다시 엘비스 프레슬리의 특별한 앨범편이 소개되는 걸 보니, 역시 엘비스 프레슬리는 죽은 지 3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세계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전설적인 스타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927서프라이즈에서 방송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야기는 그의 첫 번째 음반인 마이 해피니스에 얽힌 특별한 사연이 공개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어린시절을 매우 불운하게 지냈다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흑인들과 범죄자들이 우글거리는 흑인들이 많이 사는 빈곤한 슬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아버지는 허구한날 술만 마시는 알콜중독자 에다가 범죄를 저지르며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전과자였다고 한다. 또한 술만 마시면 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탓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하고 열악한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린시절 엘비스 프레슬리의 집은 흑인들이 많이 사는 빈곤한 슬럼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엘비스 프레슬리는 흑인아이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폭력과 행패를 겪어야 했고, 집밖에서는 흑인아이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등 내우외환에 시달려야 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면서 마음속으로 서서히 증오심을 키워나가게 된다.

 

이러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던 어머니는 어린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를 진정으로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엘비스의 집안의 가계를 꾸려나가는 일은 항상 어머니의 몫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술과 범죄로 인해 집에 없는 날이 더욱 많았고, 어머니가 힘든 봉제일을 하면서 집안의 경제를 어렵게 꾸려나가고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11살 생일이 되었을 무렵, 어머니는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물어보았는데 엘비스는 총을 갖고싶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 리가 생일선물로 총을 원한 것은 마음속에 싹텄던 증오심의 발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엘비스 프레슬리의 어머니는 총대신 기타를 그에게 선물해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엘비스에게 복수심을 버리고 새로운 꿈을 갖고 살아가라는 의미로 엘비스에게 기타를 선물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나이가 18세가 되었을 무렵, 엘비스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매우 특별한 선물 건네주었다고 한다.

나이 18세가 되어 트럭운전사일을 하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어머니의 생신이 다가오자,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게 된다.

 

어머니가 자신이 기타치면서 노래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엘비스는 당시 멤비스에 있는 선레코드사를 찾아가서 측음기용 음반하나를 제작해서 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린 것이다.

아버지의 무절제한 폭언과 행패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어머니에 대한 보답으로 엘비스 프레슬리가 공을 들여 처음으로 만든 노래앨범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어머니가 생일선물로 사준 기타를 연주해서 스스로 작곡을 하고, 음반사를 찾아가서 앨범취입까지 했으며, 그렇게 나온 자신의 첫앨범 마이 해피니스를 어머니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엘비스 프레슬리가 어머니의 선물로 만든 앨범 마이 해피니스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생 전체를 뒤바꿔줄 줄은 앨비스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음반으로 인해서 엘비스 프레슬리는 20세기를 뒤흔들어 놓았던 세계적인 로큰롤의 제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직접 만든 마이 해피니스는 그 음반을 제작했던 선 레코드사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노래가 무척 감성적이었으며, 서정성 짙은 멜로디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곡이었다. 특히 백인으로서 다루기 힘든 흑인들의 감성적인 발성과 느낌이 진하게 뭍어있었다고 한다.

 

그 레코드사 사장 샘 필립스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엘비스 프레슬리를 찾아갔고 그에게 이 앨범을 일반 대중들에게 발매해볼 것을 제안했으며. 1954년도에 공개발매된 마이 해피니스는 샘 필립스의 예상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빌보다 싱글차트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에 대해 보답하기 위해 만들었던 앨범이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중들의 엄청난 인기와 환호를 이끌어냈고, 이것이 엘비스 프레슬리가 미국 가요계에 데뷔하게된 계기로 작용한다.

 

 

1950년대 중반 자신의 자작곡 앨범 마이 해피니스의 히트로 인해 가수로 데뷔하게된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 이후 56년부터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벌여나가데 되었고, 전세계의 젊은 대중들에게 폭팔적인 인기를 끌면서 로크롤의 제왕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56‘Heartbreak Hotel’을 기점으로 해서 ‘Hound Dog’ ‘Love Me Tender’ ‘Too Much’ ‘Jailhouse Rock’ ‘Burning Love’ ‘My Boy’ 등 당대의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며 젊은이들로부터 폭팔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가 발표한 노래는 빌보트차트 1위를 수년간 휩쓸어버리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다.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전반까지 엘비스 프레슬리가 크게 히트한 곡을 살펴보면, 무려 30곡이 넘는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엘비스 프레슬리는 56년부터 58년까지 무려 8개곡을 빌보드차트 1위에 올려놓았다고 하는데. 데뷔 직후 3년 동안 연속해서 자신의 노래 8곡이 톱 1위를 이어나간 것이다. 거의 1년에 3곡씩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한 셈이다.

 

 

또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56년부터 69년까지 자신의 노래 17개곡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으니,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을 보더라도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성과는 50년대 전반까지의 오케스트라 중심의 선율인 스텐더드팝을 테크니컬한 전자기타를 이용해서 격렬하고 다이나믹한 사운드의 로큰롤을 선보였다는 점과 또한 그 로큰롤로 전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는 점이다.

오늘날 또는 이라고 불리우는 로큰롤을 엘비스 프레슬리가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엘비스 프레슬리를 끔직하게 아껴주었던 어머니는 엘비스가 가수로서 대중의 큰 인기를 이어가던 무렵인 58도에 40대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어머니가 사망했을 당시에. 엘비스는 군복무중이어서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며 이것은 평생 엘비스 프레슬리의 가슴에 아픈 상처로 남아있게 된다.

 

 

 

그런데 엘비스 프레슬리와 어머니에게 술주정과 행패를 부리며 나쁜 아버지 행세를 했던 아버지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가수로 성공하고 난 후, 엘비스가 극진히 보살펴주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받아야할 효도를 엉뚱한 아버지가 대신 받게된 셈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불우하게 만들었던 아버지를 모두 용서하고 극진히 보살폈다고 하니, 이또한 역시 젊은이들의 좋은 본보기감이자 표상이 되고 있다.

엘비스 프레스리, 정말 착하다. 나 같으면 끝까지 아버지를 멀리했을 텐데 ~ 

 

이렇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아버지는 나중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하고 난후에, 아들의 죽음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상실감에 빠져서, 식음도 전폐하고 아들인 엘비스만을 외치다가 2년 후 아들의 뒤를 따라갔다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하고 난후 장례식장에서 수많은 여성팬들이 기절하고 까무라치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던 것처럼, 아버지가 젊은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아버지가 좀 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엘비스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횡포와 고생으로 얻은 병 때문에 일찍 죽는 일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한 지 38년이 지난 20151,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에서 전세계의 엘비스 프레슬리 팬들이 모여 엘비스의 80세 생일파티가 열렸다고 한다. 이미 죽어서 고인이 된 지 38년이 된 고인의 생일축하 행사가 열렸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서, 그만큼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식지않은 인기를 반영해주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이날 특별한 경매행사가 벌어졌다고 하는데. 그것은 엘비스 프레슬 리가 최초로 음반취입을 한 노래 마이 해피니스라는 앨범에 대한 경매라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80세 축하행사 때에 그의 노래 마이 해피니스는 경매에서 무려 35천만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자작곡한 노래 마이 해피니스가 경매에서, 앨범 한 장이 무려 3억원이 넘는 고가에 낙찰됨으로써 또다시 엘비스 프레슬리는 화제의 중심인물로 떠오르게 됐다.

 

사망한지 38년이 지났는데도, 변함없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식지않는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이유는 그가 진정으로 젊은이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노래, 젊은이들을 위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에서 비로소 반영된 록큰롤은 후대의 많은 뮤지션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록큰롤은 그후 60년대의 비틀즈, 70년대의 하드락, 80년대의 헤비메탈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음악적 기반으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70~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록밴드 그룹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준 셈이다.

 

 

, 엘비스 프레슬리가 완성한 로큰롤은 후대에 엄청난 유행을 만들었던 하드락과 헤비메탈의 모태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음악들은 70~80년대에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던 음악들이며 전세계의 젊은이들의 꿈과 낭만을 선사하는 등,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예술의 한 장르로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만큼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향력은 그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세계의 팝 발전에 큰 영향을 주고있는 셈이다, 그래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위대한 것이다.

 

그럼 엘비스 프레슬리가 데뷔 초기인 56~57년도에 크게 히트했던 노래 하운드 독제일하우스 락의 동영상을 한번 들어보도록 하지요!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이 왜 인기가 좋은지 오늘날의 시각과 감성으로 한번 감상해보도록 하지요! 지금 들어도 이들 노래는 무척 신나고 경쾌하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Jailhouse Rock’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운드 독

 

  

 

 

 

 

 

엘비스 프레슬리의 빌보드 차트 1위곡 (17)

 

(1956) Heartbreak Hotel

(1956)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1956) Don't Be Cruel / Hound Dog

(1956) Love Me Tender

(1957) Too Much

(1957) All Shook Up

(1957) (Let Me Be Your) Teddy Bear

(1957) Jailhouse Rock

(1958) Don't

(1958) Hard Headed Woman

(1959) A Big Hunk o' Love

(1960) Stuck on You

(1960) It's Now or Never

(1960) Are You Lonesome Tonight

(1961) Surrender

(1962) Good Luck Charm

(1969) Suspicious Mi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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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이슬람 성지순례 압사사고 원인, 사망자수 769, 부상자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성지순례를 하던 순례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숨지는 끔찍한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사우디아리비아의 메카에는 매년 이슬람 최대의 행사인 하지기간에 수백만명이 넘는 순례객들이 방문해서 알라신마호메트를 기리는 성대한 성지순례 행사가 계속해서 열려 왔다.

 

 

지난 924일에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수많은 이슬람교신도들이 몰려들었고 메카 외곽에 있는 미나에서 악마에게 돌던지기행사가 벌어졌는데, 갑자기 행사장주변으로 수많은 순례객들이 몰려들었고, 군중과 군중이 서로 밀고 밀리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순식간에 수백명의 순례객들이 몰려든 군중들에 밀리고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슬람의 가장 큰 행사인 성지순례 기간에 발생한 압사사고로 인해 769명의 사망자와 93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총 1,70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압사사고는 성지순례 기간 도중 발생한 사고로는 90년도 1,426명이 사망한 사고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사고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런 사우디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이란 프레스TV는 하지위원회 오하디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사망자수가 2,000에 이른다고 26일 보도하고 있으며 사우디당국이 자신들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서 사망자수를 고의적으로 축소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성지순례 압사사고는 이슬람 성지인 메카에서 동쪽으로 약 5정도 떨어져있는 미나에서 사탄의 기둥에 돌 던지는 자마라트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순례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발생했다고 한다.

 

주변의 이슬람국가들은 이번 성지순례 압사사고가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의 안전관리 소홀과 안전불감증 때문에 더 큰 인명피해가 생겼다고 지적하면서, 사우디 당국의 안전관리 소홀을 집중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자국민 238명이나 사상자가 발생한 이란 정부는 압사사고가 해매다 되풀이되고 있는데도, 사우디당국의 안전불감증 때문에 예방할 수도 있는 압사사고를 막지못하고 있다고 사우디아라비아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성지순례 압사사고로 인명피해가 커진 것은 순례객들이 안전요원의 지시에 따라지 않았고, 안전규정을 어겨서 이같은 대형사고가 생겼다고 해명하고 있는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14일 전에는 대형 타워크레인이 불어오는 강풍에 밀려 무너져내려서 107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데 이어, 한 달도 안되어 또다시 대형 압사사고가 발생함으로써 총체적인 안전관리 부실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신도에게는 5가지의 종교의무를 진다고 하는데 이것이 오주라는 것이다.

그 오주의 중 하나가 하주의 달에 카바신전이나 메카 북동쪽에서 열리는 대제사에 참가해야 하는 것인데. 이슬람 신도라면 일생에 한번 이상은 이 성지순례에 참가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번 성지순례 참사를 보고면 느끼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나도 무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슬람에서 믿는 알라신도 이름만 다를 뿐 기독교의 하나님과 똑같은 신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존재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물질적인 형태나 너무 공간적인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반복적으로 하지 성지순례 때 대참사가 발생하고 있는데, 성지를 찾아간 그들은 하나님을 가까이서 보고싶고 체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마음으로 성령으로 사람에게 임할 수는 있지만, 결코 물질적인 형태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니님은 물질적인 개념이 아닌 에테르 형태의 영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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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영의 금융대부업회사 광고모델 논란, 이영애는 광고출연제의 거절

 

   

일본계 대부업체 CF광고, 이영애는 ‘NO’ 고소영은 ‘YES’

 

한국의 대표적인 광고 CF퀸이자 톱스타인 고소영이 많은 문제를 안고있는 일본계 금융대부업체 광고를 찍었다는 것 때문에 여론의 심한 질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업체는 대부업체를 계열사로 가지고 있는 종합금융회사라고 하지만, 주력사업이 대부업이기 때문에, 대부업을 주력으로 하는 금융회사에 톱스타인 고소영이 광고출연을 함으로써 구설수에 오르며 큰 논란을 빚고있다고 한다.

 

 

고소영의 이번 CF광고 출연에 대해 고소영 소속사측에서는 고금리 상품이나 대부를 조장하는 광고는 하지않을 계획이고, 기업차원의 이미지광고에만 출연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고소영의 이번 금융업체 광고출연에 대해 실망스러워하는 분위기이다. 고소영이 기업차원의 이미지광고만 찍는다고 하지만, 이 회사가 추진하는 주력사업이 바로 고금리상품을 취급하는 대부업이기 때문이다.

 

이회사는 일본계금융회사로 대부업을 주종으로 해서 우리나라의 대부업계에 진출해서, 우리나라 대부업분야를 많이 잠식해가고 있는 회사로 잘 알려져있다고 한다. 

더욱이 고소영은 자신의 CF광고 출연사실을 자신의 SNS에 올려서 많은 네티즌들에게 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동안 고소영은 대표적인 한국 인기배우 장동건과 결혼해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그동안 바른 이미지, 반듯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는데, 도덕적으로 많은 문제를 갖고있는 일본계 금융업체에 광고출연을 함으로써, 일반 대중들에게 실망스러움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 이영애는 같은 업체의 광고출연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고소영과 이영애의 행보가 명백하게 비교가 되고있는 부분이다.

 

 

이영애는 해당 대부업 금융회사로부터 2차례 이상 CF광고 출연제의가 왔었고, 계속해서 광고 출연요청이 거듭되자, 이영애는 과거 B카드사 광고 이후, 금융업광고는 사양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소영은 이영애가 거절한 같은 대부업체 CF광고제의를 승낙하고 CF광고를 찍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연예계 톱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두 여배우의 너무나도 다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이영애는 과거 B카드회사 CF광고를 찍었었는데, 나중에 카드대란이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카드빛을 갚지못하고 카드업체들이 부도가 나는 등 무분별한 카드발행으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었던 것을 알고는 그후 카드광고를 비롯한 그 어떤 금융업체 광고는 찍지않는다는 입장을 정했다고 한다.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고있는 일본계 대부업체 광고를 한국의 톱스타인 고소영이 선뜻 받아들여 CF광고를 찍는다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어보이며, 고소영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추락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2, 3류 영화배우도 아니고, 한국의 톱스타이자, 인기배우 장동건을 남편으로 두고 있는 고소영이 무엇이 아쉬워서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고있는 고리대부업체의 CF광고를 찍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미지가 별로 안좋은 대부업체들은 톱스타를 광고모델로 섭외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두배, 세배의 거액의 광고료를 제시해서 톱스타를 CF모델로 고용하는 관행이 있다고 한다.

돈만 많이 준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광고라도 출연하겠다는 것은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내기는 곤란할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톱스타로서의 이미지가 깎일 수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대중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금융회사가 광고를 찍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고, 연예인이 광고출연하는 것 또한 우리가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필 이영애가 두 번이나 거절했던 문제있는 광고제의를 다른 연예인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톱스타인 고소영이 출연했다는 것이 논란을 낳고있는 것이다.

 

이영애가 같은 금융회사의 광고제의를 두번이나 거절한 것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같은 회사의 광고를 고소영은 선뜻 받아들였다는 것이 일반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 부분이다.

 

 

해당 금융회사는 분명 고금리상품을 취급하는 대부업을 주력으로 하고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있는 회사라는 것이다.

몇십%의 높은 이자를 붙여서 당장 돈이 급한 서민들을 꼬셔서 서민들의 등꼴을 빼먹는 부도덕한 일을 하고있는 회사가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아닌가?

 

절박한 상태에 빠져있는 돈없고 힘없는 가난한 서민들에게 접근해서 각종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대출받게 해놓고는, 엄청나게 높은 이자를 물려서 서민들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오히려 서민들의 등꼴을 빼먹는 짓을 그동안 많은 대부업체들이 해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십수년간 톱스타로 군림하면서 많은 부와 명성, 인기를 쌓아왔던 톱스타가 무엇이 아쉬워서 이같은 문제가 많은 대부업체의 광고에 출연하는지, 대중들로서는 쉽게 이해가 가질 않는 부분이다.

 

만일 그 일본 대부업체와 광고계약을 맺은 사람이 2류나 3류 연예인이었다면, 그리고 생계를 잇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면, 즉 생계형 CF광고 출연이었다고 하면 그래도 어느정도는 이해해줄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남편인 장동건과 함께 십수년간 한국의 대표적인 톱스타의 위치에 올라있고 많은 부귀를 누리고 있는 고소영이라고 하는 점에서 논란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 최수종과 김하늘도 대부업체 광고를 철회하거나 거절한 적이 있었다. 최수종은 대부업체 광고를 계약해놓은 후에. 여론에서 큰 논란이 일자, 곧바로 출연계약을 철회하였으며, 김하늘은 처음부터 일본 대부업체 광고를 거절했다고 한다.

거액의 모델게런티를 제시했을 텐데도 이들 배우들이 광고출연을 거절한 것은 대부업체의 안좋은 이미지와 그 해악성을 알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번 고소영의 CF광고 출연을 과연 일반 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잘못하면 고소영의 톱스타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수도 있고, 많은 대중들이 실망하게 되면, 팬들이나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일도 생길 수도 있으니. 신중한 처신이 필요한 것이다.

 

유명인이 아닌 일반 사람이라면 이런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해도 이미지 훼손이나 도덕적인 비난 같은 일이 생길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 개인이 아닌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톱스타 정도가 되면, 항상 많은 팬들과 대중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톱스타로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연예인은 혼자 잘나서 톱스타로 성장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반 대중들과 많은 팬들이 아낌없는 성원과 사랑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대중들의 사랑으로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 것이며. 명예와 부귀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톱스타라면, 항상 언행에 신중해야 하며. 그들의 선택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대중들의 관심과 표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영애는 평소의 이미지대로 신중하게 처신함으로써 대부업체의 광고제의를 뿌리치고 이유있는 거절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고소영은 이영애와 다르게 선뜻 대부업체의 광고제의를 수락함으로써 스스로 논란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톱스타의 이미지에 맞게 좀 더 신중한 처신과 선택이 필요하다고 본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선택으로 인해서 이미지가 크게 깎이고 대중들의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 또한 스스로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대중들은 자신들이 사랑하고 있는 스타가 선하고 도덕적이며 모범생일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기대감이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자신이 선택한 스타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성원을 보내줄 수 있는 것이다.

 

- 추신 -

 

고소영 소속사는 고소영의 대부업체 광고에 대해 25일 공식입장을 밝혀왔고, 고소영이 해당 일본 금융대부업체와의 광고 계약을 전격 해지했다고 발표했다.

 

고소영은 '다방면으로 성장하고 있는 금융사의 기업브랜드를 제고하기 위해 광고출연 요청을 해와서 좋은 뜻으로 광고출연에 응했었는데, 제가 본의 아니게 간과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곧바로 광고출연 계약을 해지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밝혔다. 

 

고소영은 대부업체 광고 출연 계약을 한 지 2일 만에 전격 계약해지를 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대중들은 그녀의 용기있는 결단에 박수갈채를 보내줄 것이다.

역시 대중들의 사랑을 먹는 사는 톱스타다운 매우 용기있는 결단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고소영의 대부업체 광고출연 2일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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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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