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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21 (신비한tv 서프라이즈) 클라크 게이블과 부인 케롤 롬바드 사망,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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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672, 클라크 게이블의 단 하나뿐인 사랑, 여배우 캐롤 롬바드

 

 

 

 

719일 방송된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허리우드의 미남배우 클라크 게이블과 캐롤 롬바드의 세기적인 사랑을 소개해서 시청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미국 허리우드 영화배우로서 유성영화시대로 접어들었던 1930~40년대 잘생긴 외모와 카리스마있는 연기로 최고의 연기를 끌었던 배우는 단연 클라크 게이블이였다

클라크 케이블은 훤칠한 키와 세련된 옷차림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미소와 멋진 수염등의 카리스마있는 자신만의 멋지고 낭만적인 스타일을 창조해서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의 연인이자 스타로 급부상하였다.

 

클라크 게이블은 강인한 미국남성상과 멋지고 낭만적인 바람둥이 스타일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그가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여 명품연기를 펼치면서 허리웃의 흥행성이 가장 높은 스타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미남배우다.

 

 

클라크 케이블은 1934어느날 밤에 생긴 일에 출연하여 낭만적인 명품연기를 펼침으로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며 특히 1939년 크라크 게이블이 바람둥이 버틀러로 출연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클라크 게이블의 매력과 존재감을 더 한층 높여주었고 함께 출연한 비비안 리와의 사랑의 줄다리기는 전세계팬들의 가슴에 풋풋하고 진한 로망스의 추억으로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때로는 사나이다운 강인함을 지닌 박력있는 열혈남아로 때로는 부드럽고 낭만적인 신사이자 바람둥이로서 명품연기를 보여주는 클라크 게이블은 그가 출연한 영화의 작품성을 한층 더 높여줌으로써 전세계의 수많은 관객들의 열광과 한호를 불러일으켰던 허리우드의 가장 유망한 배우로 인기와 명성을 크게 누렸던 배우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만일 클라크 게이블이 연기한 버틀러가 없었다면 전쟁과 참혹으로 점철된 그 영화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영화로 흘러갔겠는가!

클라크 게이블의 유머와 낭만신사로서의 멋과 풍류를 한껏 보여줌으로서 영화의 재미가 크게 배가되고 낭만과 로망스가 극대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클라크 케이블과 케롤 롬바드

 

이처럼 클라크 게이블만이 지녔던 강렬한 카리스마로 인해 영화의 완성도는 훨씬 더 높아지고 관객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무한 감동과 환희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처럼 박력있는 바람둥이 스타일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클라크 게이블의 사생활은 어떠했을까? 클라크 게이블은 그의 높은 인기만큼 주변에 여자들이 많았다고 하며 무려 5번의 결혼식을 올려 큰 화제를 몰고오기도 했다.

 

캐롤 롬바드

 

클라크 게이블은 무명배우 시절 자신에게 연기지도를 해주었던 14살 연상의 조세핀 달런과 첫결혼을 하였는데 그녀에게서 어머니같은 따뜻함과 모성애를 느껴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클라크 게이블은 자신이 태어날 때 이미 어머니가 사망하여 오랫동안 사나운 성격의 계모밑에서 자라 어머니의 사랑에 많이 결핍되어 있었다.

 

클라크 게이블의 두 번째 부인 역시 17세 연상의 리어 랭험으로 풍부한 재산을 갖춘 사교계의 여왕으로 그녀는 엄청난 자금과 인맥을 동원해서 클라크 게이블이 무명배우에서 톱스타로 발돋움하는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여인이다.

 

클라크 게이블과 17세 연상의 두번째부인 리어 랭험

 

두 번째 부인 리어 랭험의 무한한 지원과 도움을 받아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클라크 게이블 주변에는 수많은 여성팬들이 따라붙었고 이미 세계적인 스타로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된 클라크 게이블이 함께 출연한 허리우드의 미녀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리면서 허리우드의 바람둥이배우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그런데 클라크 게이블이 이처럼 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린 것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사랑결핍으로 인한 마음의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는 여성을 클라크 게이블이 계속 찾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클라크 게이블과 염문을 뿌렸던 여배우들은 단지 그가 찾고 있던 진정한 모성을 시험해보기 위한 과정중에 일어난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클라크 게이블이 결핍을 느껴왔던 모성을 찾는 과정에서 단지 한번 지나쳐간 여인들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클라크 게이블은 한 살 때 여읜 어머니의 진정한 모성을 느끼게 해줄 여성을 계속 찾고있었다는 얘기다. 존 크로포드, 로제타 영 같은 여배우들은 그가 찾는 과정중에 지나쳐버린 여성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바랑둥이 클라크 게이블의 변명같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의 결핍이 얼마나 컷는지를 짐작해볼 수도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그런 클라크 게이블이 진정한 모성을 느끼게해준 여인이 하나 나타나게 된다. 바로 당대의 미녀여배우 캐롤 롬바드가 바로 그사람이다유명한 바람둥이로 소문났던 클라크 게이블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한없이 그리워했던 사람은 바로 캐롤 롬바드 한 여인뿐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에 헐러우드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 소문났던 캐롤 롬바드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 사느냐 죽느냐’ ‘마이맨 갓프리’ ‘스미스부부등이 크게 히트하면서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매력적인 여배우로 인기가 매우 높았던 여배우다.

 

 

캐롤 롬바드가 그당시 얼마나 인기가 높았는가 하면 그녀의 높은 개런티를 보면 짐작할 수가 있는데, 30년대 후반 캐롤 롬바드가 출연할 당시 주당 4,000만원의 개런티를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돈으로 환산하면 약 6억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의 개런티를 받았으며 30년대 후반 최고의 몸값을 받던 여배우가 바로 케롤 롬바드였던 것이다.

 

 

클라크 게이블과 캐롤 롬바드는 영화 그녀의 남자는 없어에 함께 주연배우로 출연하면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그당시 두사람 모두 배우자가 있는 유부남, 유부녀의 처지였다

그런데 당대의 미녀여배우로 소문난 캐롤 롬바드는 영화촬영을 함께 했던 클라크 게이블에게 매우 차갑게 대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클라크 게이블이 바람둥이에다가 나이 많고 돈 많은 여인들과 결혼해서 그녀들을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이용한다는 소문 때문에 클라크 게이블에 대한 선입견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클라크 게이블에게 영화 촬영내내 냉담하게 대하는 캐롤 롬바드로 인해 두사람은 별다른 스캔들 없이 영화 촬영을 끝냈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촬영이 끝난 후 4년이 지난 무렵 클라크 게이블과 캐롤 롬바드는 한 파티장에서 우연히 다시 재회하게 되는데 이때에도 클라크 게이블이 캐롤 롬바드를 먼저 발견하고 그녀에게로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하였는데, 캐롤 롬바드는 여전히 그에게 차갑게 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위 동료들이 두사람이 사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농을 하자, 캐롤 롬바드는 정색을 하며 자신은 클라크 게이블 같은 바람둥이는 싫다고 하며 돈많은 여자를 이용해먹는 그런 남자는 더더욱 싫다고 말하면서 클라크 게이블에게 모욕감까지 안겨주며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1930년대 허리우드 최고의 미인 캐롤 롬바드

 

우연찮게 다시만난 캐롤 롬바드에게 모욕아닌 모욕을 당한 클라크 게이블은 멀리 피해버린 캐롤 롬바드를 따라가서 두사람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런데 이렇게 4년 만에 다시 만난 클라크 게이블과 캐롤 롬바드는 말다툼했던 것이 오히려 두사람의 관계를 가깝게 해주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이 남녀 사이가 아닌가!

 

자신에 대해서 단단히 오해를 하고있다고 생각한 클라크 게이블은 캐롤 롬바드에게 진솔하게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클라크 게이블은 남들한테는 한번도 얘기하지 않았던 자신의 출생이야기부터 자신이 본심이 담긴 이야기를 모두 캐롤 롬바드에게 해주었고 캐롤 롬바드는 클라크 게이블의 불행했던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여성으로서의 모성애를 자극받았던 것이며 클라크 게이블에게 서서히 빠져들게 된 것이다.

 

클라크 게이블은 태어나던 해에 어머니를 잃고 성격이 포악한 계모밑에서 자라면서 학대를 받았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직 나이어린 청소년기때부터 인정머리 없는 계모로부터 돈을 벌어오라는 욕도 많이 먹은 클라크 케이블은 18세때 돈도 한푼 없이 집을 가출한 이래, 동가숙 서가식 하면서 떠돌이 유랑생활을 하면서 고생을 참 많이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크라크 케이블의 마음속 한켠에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에 목말라 있었으며 자신에게 어머니 같은 따뜻한 사랑을 베풀었던 나이 많은 연상의 여인에게 쉽게 정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머니로부터 받지못한 사랑의 결핍 때문이었으며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다고 한다.

 

자신과 결혼한 나이많은 여인들은 또다른 억압과 구속으로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박탈해왔다고 하며 그런 클라크 게이블에게 캐롤 롬바드는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클라크 게이블의 불행한 인생역정을 전해들은 캐롤 롬바드는 이제 더 이상 클라크 게이블에 대한 편견을 갖지않게 되었고 그를 위로하고 동지이자 연인으로 뒤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두사람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결혼을 하고 행복한 신혼가정을 차리게 된다그런데 클라크 게이블과 캐롤 롬바드의 꿈같은 결혼생활을 신이 질투한 것인가!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1942년 뜻하지 않은 비행기사고로 인해 불행한 결말로 끝나게 된다.

 

 

2차세계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1942년 미국정부는 막대한 전쟁비용에 충당할 전비가 부족해지자 국가에서 채권을 발행해서 부족한 전비를 마련하고 있었는데 당시 인기가 높았던 허리우드 배우들을 대거 동원해서 전쟁채권 홍보프로모션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클라크 게이블의 부인 캐롤 롬바드 또한 전쟁채권 홍보이벤트에 동원되어서 타지역에서 행사를 치렀던 것이고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기가 그만 LA의 한 야산에 충돌해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해 사망하게 된다.

당연히 클라크 게이블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졌고 오랫동안 두문불출하며 집안에서 술만 마시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클라크 게이블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지, 돌연 영화배우로서 은퇴를 선언하고 미공군에 입대하게 된다. 미공군에 입대해서 비행기조종술을 배운 후에 클라크 게이블은 종종 혼자서 어디론가 비행기를 몰고 사라지곤 하였는데 클라크 게이블은 바로 자신의 부인이 탄 비행기가 추락했던 그지역을 날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비행기 추락지점을 헤메인 끝에 자신의 부인 캐롤 롬바드가 두르고 있었던 스카프를 찾아냈다고 한다.

클라크 게이블은 자신이 진실로 사랑했던 캐롤 롬바드의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녀가 사망했던 사고지점을 찾아 헤메인 끝에 그녀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스카프를 찾아냈던 것이다.

 

정말 천하의 바람둥이라고 소문난 클라크 게이블에게서 느껴볼 수 없었던 클라크 게이블의 또다른 면모를 발견하고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는 부분이다.

 

바람둥이인줄 알았던 클라크 게이블에게 이런 순정파다운 면모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클라크 게이블을 다시 보게 됐다클라크 게이블이 돌연 공군에 입대한 것은 바로 자신이 끔찍이도 사랑했던 부인 캐롤 롬바드의 흔적과 유류품을 찾기 위해서였던 것이다클라크 게이블에게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게했던 장본인이 바로 캐롤 롬바드였다고 한다.

 

 

클라크 케이블은 캐롤 롬바드가 사망한 몇 년 후에 두 번의 결혼식을 더 올리는데 클라크 케이블이 재혼했던 여자들은 실비아 애슐리, 케이스 트렉스로 모두 캐롤 롬바드와 매우 닮은 여배우들이었다. 클라크 케이블은 끝끝내 캐롤 롬바드를 잊지못했던 것이다.

 

196059세가 된 클라크 케이블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만다죽어가는 순간에도 크라크 케이블은 다른 여인들은 제치고 오직 케롤 롬바트만을 불렀고 그리워했다고 한다.

결국 클라크 게이블은 사망했고 그의 묘지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캐롤 롬바드 묘지 옆에 나란히 묻혔다고 한다.

 

허리웃의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섯 번이나 결혼식을 올렸던 클라크 게이블이지만 클라크 게이블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캐롤 롬바드 단 한사람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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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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