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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여배우 진 티어니의 비극과 자살시도, 정신병원

 

  미국 헐리우드영화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전환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던 시기인 1940년대로, 이시기는 미국 허리우드영화가 크게 번성했던 중흥기라고 할 만하다.

 

이시기에 미국 허리우드에는 4대미녀 여배우들이 대거 출현해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비비안 리와 에바 가드너, 잉그릿드 버그만, 그리고 진 티어니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 미녀여배우들은 연기도 뛰어났지만, 세기적인 미모를 간직하고 있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허리우드영화계를 주도해나가고 있었다.

 

 

비비안 리와 에바 가드너, 잉그릿드 버그만등 여배우들은 각각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그녀들 못지않게 멋지고 화려한 미모와 명품연기로 그시대를 풍미했던 또다른 미녀스타 진 티어니가 있었다.

 

만일 진 티어니가 결혼을 훨씬 더 늦게 했더라면, 그녀는 아마도 비비안 리나 에바 가드너보다도 더 큰 명성을 누렸을 지도 모른다.

진 티어니가 결혼하기 전에는 영화등에 출연하여 이지적인 미모와 명품연기를 펼치면서, 허리우드의 미녀스타로 큰 인기를 끌고있었다.

 

 

갈색머리결에 푸른눈, 조각 같은 이목구비에 이지적인 미모로 40년대의 대표적인 미녀스타로 각광을 받았던 진 티어니는 우아하고 고혹적인 분위기로 명품연기를 펼치면서, 세계의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최고의 미녀스타였다.

 

진 티어니는 194019세의 나이로 프랭크 제임스의 귀환으로 허리우드영화계에 데뷔했으며, 영화 썬다운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명품연기를 선보이면서 스타덤에 올라, 일약 세계적인 미녀여배우로 큰인기를 끌게되었다.

 

진 티어니는 그 후 여러편의 영화들에 출연해서 흥행에 성공하면서, 허리우드의 간판스타로 자리잡게 되었다.

 

 

진 티어니는 인기절정의 시기인 1941년도에 올렉 카시니라는 사업가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2년 뒤에 딸 달리아를 출산하면서, 여성으로서 큰 행복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진 티어니가 낳은 딸 달리아가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였으며, 또한 백내장을 앓고있어 곧 시력도 상실했으며, 지적 장애아로 판명났다고 한다.

 

자신이 낳은 딸이 청각장애와 시각장애를 가진 장애아라고 하는 청천벽력의 날벼락을 얻어맞은 진 티어니는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히고 만다.

 

 

허리우드의 톱 미녀스타로 최고의 인기를 끌고있던 진 티어니는 자신의 딸이 이처럼 여러 가지 장애를 가진 장애아라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과 상실감에 휩쌓이게 되었고, 결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왜 하필 자신에게서 이런 불행한 딸이 태어났는지 하는 생각에, 진 티어니는 엄청난 상실감과 자책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나서, 순식간에 허리우드의 톱미녀스타로 올라섰던 진 티어니는 갑자기 자신에게 찾아온 엄청난 불행에 큰 충격을 받게된다.

결국 진 티어니는 심한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거기다가 알콜중독과 수면제복용으로 그녀의 몸과 마음은 점점 더 쇠약해져만 갖다.

 

 

진 티어니는 졸지에 정신과치료를 받는 상황에까지 처하고 만다.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가벼운 산책과 운동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결국 진 티어니는 병원의 권유대로 운동에 집중했다고 한다. 1945년 진 티어니는 한 테니스장 라터룸에 들러 운동복을 가라입는 상황에서, 자신의 팬을 자처하는 한 여성과 만났다고 한다.

 

그 여성팬은 진 티어니를 보자마자 크게 기뻐하며, 자신이 진 티어니의 오랜 팬이었다고 말하면서, 몹시도 반가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 티어니는 그 여성팬에게서 전혀 뜻밖의 말을 듣게된다. 1943년도에 미국에서 열린 전시채권 판매캠페인에서, 그 여성팬은 진 티어니를 만났었다고 했다.

그 여성팬은 오래전부터 진 티어니의 열성팬이었는데, 그 전시채권 판매캠페인에 진 티어니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행사장으로 찾아와서 진 티어니를 직접 만났다는 것이다.

 

진 티어니는 2년전 미국정부로부터 전시채권 판매행사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며, 그당시 아이를 임신한 몸이었던 진 티어니는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서, 흔쾌히 전시채권 판촉행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전시채권 판매캐페인은 그당시 2차세계대전이 한창 진행중이던 시기에, 미국정부는 부족한 전쟁자금을 조달받을 목적으로, 전시채권을 국민들에게 판매해서 부족한 전쟁자금을 확보하려고 기획한 행사라고 한다.

 

 

허리우드의 톱스타들은 이같은 전시채권 판촉행사에 동원되어 얼굴을 내밀면, 미국시민의 큰 관심을 끌게 되고, 당연히 전시채권 판매율을 크게 높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미국정부가 개최한 전시채권 판촉행사에 참여한 진 티어니는 전시채권을 구매한 팬들의 볼에 키스하는 이벤트를 벌였다고 하며, 수많은 팬들에게 직접 키스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 티어니가 라커룸에서 만난 그 여성팬도 그 전시채권 판촉행사장에 찾아왔다고 하며, 진 티어니의 열성팬이었던 그녀도 진 티어니의 키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진 티어니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그 여성팬은 그당시 풍진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병원관계자들은 병의 증세가 심한 그녀에게 행사장에 나가지못하게 말렸는데, 그 여성팬은 몰래 병원을 탈출해서, 전시채권 행사장에 찾아왔다는 것이다.

 

 

진 티어니에게 이같은 말을 하면서, 매우 기뼈하고 있는 그 여성팬의 말을 듣는 순간, 진 티어니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고서 쓰러질 뻔했다고 한다.

 

그 당시 진 티어니는 자신의 딸을 임신한 임신초기의 상태였기 때문에, 진 티어니가 그녀와 키스를 하면서, 그녀로부터 풍진이 감염되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풍진은 고열과 오한, 몸살과 기력이 쇠락하는 홍역과 유사한 질병이며,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 잘 걸리는 질병이다.

그런데 이 풍진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가벼운 몸살 정도로 끝날 수도 있지만, 임신한 임산부가 이 병에 걸려서 태아에게도 감염이 된다면, 기형아로 태어날 정도로 간난아이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진 티어니가 낳은 딸 달리아가 기형아가 된 것은, 결국 임신초기 때 이 여성팬과 만나서 풍진이 감염되었던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자신의 딸이 기형아가 된 것도, 자신이 불행해진 것도 운나쁘게도 이 여성팬을 만났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러니 진 티어니는 이 극성 여성팬의 이같은 말을 듣고서, 너무나도 소름끼치고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신과 딸의 불행을 만들어준 원인제공자가 바로 자신을 좋아하는 열성팬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그녀는 기가 막히고 충격적이었을지 상상히 가고도 남는다.

 

진 티어니는 그 여성팬을 만나고 난 후 더욱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국 딸이 장애아로 태어난 것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해졌기 때문이다.

 

 

병원의 권유로 운동에 몰두하면서 일시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갔던 진 티어니는 또다시 충격과 자괴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술과 약물에 빠지게 되고, 급기야는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집에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한 시도한 그녀는 가까스레 주변사람들에게 발견되어서, 다시 깨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살 시도 이후, 진 티어니는 남편에 의해서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야 만다.

한 때 허리우드의 최고 미녀스타로 각광을 받았던 그녀가 정신병원에 감금당하는 삶의 나락으로 추락하고만 것이다.

 

그리고 진 티어니는 정신병원에서 탈출을 시도했다고 하며, 그후 정신병원에 재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20대의 꽃다운 나이를 대부분 정신병원에서 지냈다고 한다.

진 티어니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는데, 1952년 결국 남편과도 사이가 나빠져서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혼 후에 진 티어니는 혼자서 장애인딸을 키워나가는 등 진 티어니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불운했다고 한다.

 

 

진 티어니는 나중에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그 팬을 처음 봤을 때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그 여성팬을 두 번째에 보았던 순간 만큼은 결코 영원히 잊지못할 것이다.

그 여성팬을 두 번째 보았을 때에는 자신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그 여성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진 티어니의 이같은 기막힌 사연은 에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깨어진 거울의 소재가 되었다고 하며,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화제가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진 티어니는 이혼 후에 혼자서 외롭게 장애인딸을 양육하면서, 불운한 삶을 살아갔으며, 1991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깝고 기막한 진 티어니의 삶이 아닐 수가 없다. 허리우드의 최고의 인기여배우였던 그녀가 행복해야할 결혼이 장애인딸을 낳으면서,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는 폐인같은 인생으로 변해버렸으니, 정말 진 티어니는 불행하고 안타까운 삶을 살아간 기구한 여배우였다.

아마도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여배우 중에서, 진 티어니가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녀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비비안 리와 에바 가드너 같은 여배우들은 항상 곁에서 사랑하는 남편이나 애인이 함께 있어줬지만, 진 티어니만은 남편과 이혼한 후에 혼자서만 장애인딸을 키워나갔던 외로운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진 티어니가 불행해진 원인을 가져다 준 장본인이 다름아닌 그녀를 사랑하는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에 더욱 기가 막힐 뿐이다.

 

고의적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열성팬 때문에 그녀는 가장 불행하고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허리우드 인기 여배우 중에서 가장 불행하고 기구한 삶을 살아갔던 인물은 진 티어니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몇 년 만 조금 늦게 결혼했더라면, 아니 전시채권 판매행사장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진 티어니는 가장 불행한 여성이 아닌, 가장 행복한 여성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진 터어니는 21세의 이른 나이에 결혼했는데, 그녀의 경우에는 너무 빠른 결혼이 결국 그녀의 인생에 족쇄를 채우는 불행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결혼 때문에 영화에도 출연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녀가 30세 이후에 결혼을 했더라면, 더 많은 명작품들을 많이 남길 수도 있었으며,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는 여배우가 바로 진 티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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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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